[살며 사랑하며-김용신] 성탄절 기도
입력 2013-12-25 01:44
딸이 여섯 살 때 나에게 물었다. “엄마, 왜 성탄절에 우리가 선물을 받아요? 예수님 생일인데 예수님이 선물을 받아야죠.”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너는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고 예수님 선물은 네가 준비하는 거야.” 그랬더니 한참 고민하던 딸아이가 드디어 선물을 결정했다. “엄마, 난 기도를 할래요. 우리들을 위한 기도 말고 우리들 잘 되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 말고요 예수님의 일이 잘 되도록 기도를 할 거예요.”
예수님의 일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고자 하셨던 일들을 가만 생각해본다.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높은 사람을 낮추시고 낮은 사람을 높이시고 사랑과 평화와 나눔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게 하는 일.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자니 생각하면 할수록 성탄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섯 살 딸아이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기특한 기도를 아직까지 성탄절마다 기억하고 있다.
몇 년 전 지뢰대책회의에서 주최한 한 공연에서 오랫동안 지뢰 피해자들을 사진에 담아온 사진작가 이시우씨를 만났는데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몸의 중심이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심장? 뇌? 손? 발? 아니에요.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에요. 아픈 곳에 모든 정신이 쏠리고 아픈 곳을 배려해서 몸이 움직입니다. 그럼 세상의 중심은 어디겠어요? 세상의 중심도 아픈 곳이에요. 그러니 세상도 아픈 곳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요? 아픈 사람들을 배려하며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요?” 그날 나는 매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은 사람들은 세상의 아픈 곳으로 가면 되는 거였다. 세상의 아픈 곳으로 가는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을 향해 가듯 씩씩하게 걸어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삶을 먼저 보여준 분이 예수가 아닐까? 세상 사는 사람들도 그를 따르면 좋으련만 그게 참 어려운 일인가보다. 세상의 중심에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의 약하고 아픈 곳을 짓밟아버리는 일이 일어나곤 하니 말이다.
성탄절 아침,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 힘과 권력 대신 축복과 평화가 임하기를 빈다. 특별히 약하고 아픈 사람들, 춥고 배고픈 사람들, 일할 곳을 잃고 눈물 흘리는 모든 안녕하지 못한 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김용신 (C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