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안동현] 테이퍼링 이후의 세상

입력 2013-12-25 01:31


마침내 양적완화 축소, 테이퍼링(tapering)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11월 실업률이 7%로 하락하고 3분기 경제성장률이 4.1%로 상향 조정되는 등 경제지표가 호전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구체적 내용은 월 850억 달러의 채권매입 규모를 750억 달러로 낮춘 것으로 이 정도 규모라면 빠르면 내년 3분기, 늦으면 내년 말 정도 양적완화가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11월 시작된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이 마침내 여정을 끝내는 것이다. 그 정책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향후 학계가 검증에 나서겠지만 현재까지는 적어도 B+ 이상의 학점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대공황 이래 최대 경제위기를 5년 만에 진압의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재정절벽으로 인해 또 다른 진압 장비인 재정지출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야말로 배수진을 친 최후의 수단이었지만 온화한 외모와 달리 버냉키는 정치권과 월가의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보여줬다.

문제는 테이퍼링이 시작된 이후의 세상이다. 양적완화는 2000년대 초중반 일본이 한 번 시행한 적이 있지만 이는 엔화가치 급등을 막기 위한 제한적인 규모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천문학적인 규모의 양적완화는 유사 이래 처음이기 때문에 이를 회수하는데 따른 파장의 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미 연준의 속도조절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다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 충격의 강도가 어떻든 위험요소를 정비해 그 충격의 파장을 줄여놓을 필요성이 있다.

첫째, 금리 상승에 따른 디레버리징에 대비해야 한다. 최근 일각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로 오히려 기준금리 인하를 제기하고 있고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금리 인상을 유예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도 연속 2분기 1%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완만한 경기회복이 진행되는 한 금리 인상에 무게가 더 지워진다. 그럴 경우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한계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특히 가계부채의 경우 소득 대비 금액 측면에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으로 부채상환 능력이 최저에 해당한다. 따라서 추가적인 이자 부담은 가계 파산 및 소비 부진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간의 내수 침체에 따라 한계기업으로 전락한 중소기업들 역시 금리 인상의 파고를 넘기 쉽지 않아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565조원으로 국가부채보다도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공공기관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종합하면 가계, 기업, 공공부문 공히 디레버리징은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었다.

둘째,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테이퍼링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엔저의 가속화를 꼽고 있는데 그 내막을 살펴보면 복잡한 측면이 있다. 테이퍼링 이전은 일본이 양적완화를 통해 엔저를 주도할 수 있었지만 테이퍼링으로 인해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경우 달러 대비 엔저가 발생하게 된다. 즉 이제는 미국의 테이퍼링 속도를 보면서 속도를 가감해야 하는 기술상 어려움이 있다. 엔저는 일본의 수출에 도움이 되지만 에너지 수입이 많은 경제구조로 내수엔 부담이 된다. 대체로 달러당 125엔 이상으로 엔화가치가 하락할 경우 내수에 대한 악영향이 수출증가 효과를 상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목표치는 120엔 이하로 봐야 한다. 적어도 5엔 정도의 버퍼는 둬야 예기치 않은 엔화가치 하락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근 엔저 효과가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데다 내년 4월 소비세율 인상이 시행되기 때문에 내년 말까지는 최대한 엔저를 임계치까지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엔화가치를 달러당 최대 120엔까지 열어두고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교역량이 증가한 동남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이머징 마켓에 대한 노출도 관리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인도네시아, 태국, 브라질, 터키를 비롯한 많은 이머징 국가 환율이 하락해 선반영된 부분이 있지만 1994년 페소 위기의 악몽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가오는 2014년 갑오년은 말띠 해다. 우리 경제가 테이퍼링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힘차게 역주하길 기원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