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이어도에 외교·안보를 묻다
입력 2013-12-24 01:38
대한민국이 안팎 격랑의 정세를 헤쳐 나가는 편주(片舟) 같다. 북한 정권의 급격한 세력 부침(浮沈)과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등 그 어느 때보다도 외교와 안보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마침내 우리 방공영역 안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KADIZ)이 62년 만인 지난 15일 오후 2시 정식 발효됐다. 우리 공군 항공통제기와 해군 해상초계기가 발효 직후 처음으로 이어도 남단 KADIZ 구역까지 감시비행에 나선 역사적인 날이었다.
새 KADIZ는 기존 KADIZ의 남쪽 구역이 ‘인천 비행정보구역(FIR)’과 일치되도록 조정됐다.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인접국과 중첩되지 않게 우리 영토인 마라도와 홍도 남방의 영공, 이어도 수역 상공이 포함됐다. 다행스런 일이다.
중국이 지난달 23일 CADIZ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후 우리 정부가 이에 대응하는 새 KADIZ를 마련하기까지 보여준 태도와 해명은 실망스러웠다. 정부당국은 이어도가 바다 속 암초(暗礁)이지 해면 위에 있는 섬(島)이 아니어서 영토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설명을 했다. 배타적경제수역(EEZ) 문제로 봐야 한다는 얘기였다. 또 중국의 영공 방위 개념인 CADIZ에 이어도 상공이 들어갔다고 해서 이어도 관할권을 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는 시비를 감추고 JADIZ를 발표했을 때와 같은 태도였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재추진하던 이어도의 날(9월 10일) 조례 제정도 정부가 요청하고 중국이 반발해 지난 13일 다시 무산됐다.
이처럼 해수면 4.6m 아래에 있는 이어도는 우리의 흐린 영토 개념 속에서 가능하면 거론되지 않는 게 좋은 존재였다. 이어도에 2003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 통한(痛恨)의 사건들이 벌어졌을지 참담하다.
이어도는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 마라도와 가장 가깝다. 국제해양법상 관할권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엄연한 우리 영토인 이어도에 대해 우물쭈물할 이유가 없다. 정당한 것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시비가 발생하면 국제기구와 국제법규에 호소해 해결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국가 역량의 시금석된 영토
글로벌 국격(國格)이나 글로벌 경쟁력은 단지 국가적 부(富)의 축적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님이 분명해졌다. 주변국 눈치를 보며 자기 영토를 제대로 표명하지 못하는 자세야말로 글로벌 국격이 아니다. 영토 개념에 얼마나 소극적이고 수세적인 외교적 수사(修辭)를 동원했는지 정부는 두고두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위축된 자세로 대외정책을 꾸릴 생각들은 이젠 접는 게 좋을 듯하다.
정부는 북한 장성택 처형 사실이 확인된 뒤에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신설의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나흘 전 NSC 산하에 상설 상임위원회와 사무처를 설치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기능·조직을 강화했다. KADIZ 문제도 신속히 지금의 NSC체제에서 논의하고 결정했어야 마땅했다. 그동안 NSC체제의 부실함이 지적될 수밖에 없다.
인접국들이 자국의 안보와 영토 관할 확대를 꾀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이어도 실효지배를 무시하려는 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끝없는 긴장을 요구하는 동북아지역의 냉엄한 현실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100여년 전 대한제국 시절 서구 열강들이 대한제국을 어떻게 다루고 능욕했는지를 상기하며 역사인식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이어도는 앞으로 대한민국 역량을 가늠할 시금석이 되고도 남는 소중한 영토다.
김용백 편집국 부국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