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약품 리베이트 처벌 이대론 안 된다
입력 2013-12-24 01:27
제약회사가 의사와 약사에게 리베이트를 살포하는 악습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리베이트 수수와 관련된 제약회사와 의료인을 함께 처벌하는 쌍벌제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올 들어 리베이트를 준 혐의로 적발된 제약회사는 동아제약 CJ제일제당 대웅제약 CMG제약 삼일제약 등이다.
22일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에 따르면 삼일제약은 891개 병·의원 의료인 1132명에게 32억원을 웃도는 리베이트를 뿌렸다. 삼일제약은 제약회사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부정한 수법을 동원했다. 의료인에게 논문 번역을 의뢰한 것처럼 꾸미거나 형식적인 시장조사를 맡기면서 금품을 제공했다. 새로 출시된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주는 랜딩비, 자사 제품을 계속 처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미리 금품을 제공하는 ‘선지급금’ 방식도 썼다. 돈만 준 것이 아니다. 골프채, 항공권, 노트북, TV 등 다양한 형태의 리베이트를 건넸다.
어느 업종보다 경쟁이 치열한 제약업계에서 제약회사가 선의로 의료인에게 금품을 제공할 리는 만무하다. 제약회사는 의료인에게 리베이트를 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약값을 올린다. 이는 환자 부담을 가중시키고 적자로 운용되는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친다. 정부는 제약회사가 의료인에게 주는 리베이트 규모가 전체 약값의 20% 정도인 연간 2조1800억원으로 추산한다.
의료계에서는 행정처분을 받아야 할 의사가 1만명 이상일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을 전후해 면허정지·취소 처분을 받은 의료인은 현재 300여명에 불과하다. 정부의 관대한 처분이 리베이트 관행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정부가 달라져야 한다. 외국처럼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제약회사와 의료인을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리베이트와 관련한 의약품은 건보 급여 목록에서 빼고, 제약회사·병원·약국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파렴치한 의료인의 행정처분 수위를 높이고 이들의 명단도 공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