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빈 소년 합창단 첫 여성·한국인 지휘자 김보미씨

입력 2013-12-24 02:41


“음악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 열정 관객들에 그대로 전달됐으면”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 빈 소년 합창단은 52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그것도 동양인 지휘자를 받아들였다. 유럽에서도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오스트리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깜짝 드라마의 주인공은 한국인 지휘자 김보미(35·사진)씨. 그가 내년 1월 ‘빈 소년 합창단 신년음악회’로 한국을 찾는다. 방한을 앞둔 그를 국제전화로 먼저 만났다.

현지시간 18일 오전, 빈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그의 시원시원한 목소리에서 활달한 기운이 전해져왔다. 미혼의 동양인 여성 지휘자가 개구쟁이 소년들과 지내는 생활이 만만치는 않을 터.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모차르트반 단원들과 연습하고 점심을 같이 먹어요. 솔로나 파트별로 연습이 필요하면 따로 오후에 불러 연습을 시키죠.”

부임 직후엔 아이들과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이곳 아이들은 자기 생각도, 표현력도 강해요. 음악적인 실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물론 말로도 이길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대화 방식부터 다르게 한다고 했다. “어른들한테 말하는 것처럼 해선 안 돼요. 벌이 날아가서 쏘는 것처럼 불러보자, 여기는 솜사탕 먹는 기분으로 노래하자는 식으로 이야기해요. 쉼표가 있어 쉬어야 하는데 자꾸 틀리면, ‘또 틀리면 10센트 내기다’라고 협박 아닌 협박도 하죠.”(웃음)

그는 어린 시절 성당 음악에 빠져 음악가의 길을 꿈꿨다. 직업음악가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부모의 반대로 세종대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끝내 꿈을 접지 못하고 연세대 교회음악과에 진학했다. 독일 뢰겐스부르크대 유학 중 빈 국립음대 에어빈 오르트너 교수와 만난 것을 계기로 지휘자의 길에 들어섰다. 오르트너 교수는 그에게 “노래와 피아노 실력은 물론이고 너는 사람들과 지내는 걸 좋아하니 빈 소년 합창단이 잘 맞을 거다”라며 지휘자 도전을 권유했다. 혹독한 검증 과정 끝에 지휘대에 서게 된 것이다.

첫 국내 무대를 앞두고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지만 진심은 통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는 18∼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23∼25일 지방 무대에서도 공연을 갖는다.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을 관객들이 왜 보러 올까요. 빈 소년 합창단은 아이들이 음악을 좋아하지 않고는 힘든 여정을 견뎌낼 수 없는 시스템이에요. 음악적인 완성도, 무대 매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아이들이 음악을 좋아해서 부른다는 점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바라요.”

지난해 4월부터 9주 동안 일본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두터운 팬층에 놀랐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매년 봄 30∼35회 전국 순회공연을 해요.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빈 소년 합창단이 매년 1월 내한해 3주간 공연을 한다는 전통이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빈 소년 합창단은

1498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막시밀리안 황제의 칙령으로 조직된 유서 깊은 합창단. 10∼14세 소년 100여명이 모차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브루크너 4개 반으로 나뉘어 연간 350회 공연을 소화한다. 1978년 첫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17차례 공연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소년 합창단으로, 내한 공연도 매번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