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위해 희생한 대가, 亞인권 위해 쓰다

입력 2013-12-24 02:35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 보상금 모아 기금 마련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민주화’라는 단어가 폄훼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어요. 그들이 누리는 표현의 자유마저도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성공회대 조희연 사회과학부 교수는 23일 서울 정동 한 레스토랑에서 열린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기금 출연 협약식에서 최근 인터넷에서 퍼지는 민주화운동 혐오 현상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기금은 조 교수를 비롯해 유신시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던 6명이 국가로부터 받을 민·형사 배상금과 자발적 기부금 등 5억5000만원을 아름다운재단에 출연해 조성한다.

국가배상금 공동기금 조성자 대표인 조 교수는 “민주화운동 정신이 단지 한국이라는 공간과 그 시대에만 한정되지 않고 보편적 정신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준묵 전 스포츠서울 회장은 “우리도 민주화 과정에서 여러 선진국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이제는 우리가 민주주의와 인권이 뒤처진 아시아 국가들에게 도움을 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 교수와 김 전 회장, 김종수 도서출판 한울 대표, 변재용 한솔교육 대표이사, 하석태 전 경희대 교수와 익명의 1명이 기금 조성에 참여했다. 조 교수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지난 7월 31일 대법원에서 34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 전 교수는 “34년 전 법정에서 긴급조치와 우리 중 더 정의로운 것은 무엇인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며 “우리가 보상을 목적으로 투쟁한 것이 아닌 만큼 배상금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사용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이 기금을 아시아 전체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하는 연구사업과 캠페인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아름다운재단 예종석 이사장은 “젊은 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대가를 쾌척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더 많은 분이 기금을 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금 취지에 동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대 2000만원까지 기금을 낼 수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민간과 기업 양쪽의 힘을 모아 100억원 기금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방송통신대 이필렬 교수가 1000만원을 기부하는 등 이미 14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1975년 5월 내려진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의 부정·왜곡·비방·개정·폐기 주장이나 청원·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했다.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해 헌법을 유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79년 10·26사태 이후까지 4년 넘게 지속됐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