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산골아이 성탄절

입력 2013-12-24 01:34

‘탄일종이 땡땡땡∼저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성탄 전날 산골마을 작은 교회. 아이들이 풍금 소리에 맞춰 탄일종을 신나게 불렀다. 온종일 논바닥 얼음판에서 썰매 타던 아이, 팽이 돌리던 아이, 쥐불놀이하다 어른들에게 쫓겨난 아이 누구 할 것 없이 교회에 모였다. 조용하던 산골 교회는 성탄 전날만은 아이들 천국이었다.

예배당 성탄트리 앞 구유 속 아기예수를 자기가 더 닮았다며 아이들은 서로 입씨름을 했다. 예배가 끝나면 목사님은 연필 한 자루와 공책 한 권, 크림빵을 나눠주셨다. 손꼽아 기다렸던 성탄선물이었다.

성탄절 새벽송을 나선 목사님 일행은 등불을 들고 눈길을 밝혀갔다. 목사님은 집집마다 기도와 찬송을 했다. 초가집 문틈의 찬바람에 잠을 깬 아이도 어렴풋이 그 기도 소리를 들었다. 얼마 후 안방 윗목 항아리에서 쌀 한 줌을 바가지에 담아 나오던 어머니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가야! 산타 다녀가셨나 보네.’ 이불만 파고들던 아이는 기쁨에 들떠 밖으로 나갔다. 역시 대문 위엔 ‘메리 크리스마스’라 적힌 예쁜 성탄카드가 놓여 있었다. 문 앞을 맴돌던 하얀 발자국들은 지난밤 산타가 다녀간 흔적이라고 아이는 믿었다.

여느 때 같이 어머니는 한 솥 가득 보리쌀 위에 쌀 한 줌 올려 아침밥을 지었다. 어른에게만 드려야 할 흰쌀밥을 자기에게 안준다며 떼쓰며 울던 아이도 성탄절만은 조용했다. 간밤에 교회에서 받아온 크림빵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렸다.

금박 성탄카드는 아무리 봐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성탄카드 속의 사슴썰매를 탄 산타할아버지는 자신같이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고 간다고 믿었다. 아이는 목사님이 주신 새 공책에 멋진 기억을 그려 넣었다. 며칠 전 교회 선생님이 데리고 간 전주시내 영화관. 김희갑·황정순 주연의 ‘팔도강산’은 평생 잊지 못할 ‘시네마천국’으로 남았다.

어느 덧 산골 아이의 나이도 쉰 살을 넘었다. 매년 성탄절이면 산골 교회가 떠오르고 풍금 소리에 실린 아이들의 찬송이 귓가를 스쳐간다. 닥쳐올 보릿고개를 걱정하며 살았던 어려웠던 시절 모든 이들에게 성탄은 기쁨과 희망이었다. 콧물을 훔쳐내던 아이는 산골 교회 구유 속 아기예수를 늘 가슴에 그리며 산다.

마구간 낮은 곳으로 이 땅에 오셨던 아기예수. 주후 2013년 성탄절 전야 이 땅 어디선가 헐벗고 배고픈 아이들에게 큰 기쁨과 희망이 되리라.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