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순환출자는 유지… 경영권 편법승계 차단 기대
입력 2013-12-24 02:38
앞으로는 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계열사 수십 개를 지배하는 순환출자를 할 수 없게 된다. 기존 순환출자는 유지되지만 향후 총수가 있는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부실 계열사 편법 지원 관행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동양사태 계기로 입법화 성공=국회 정무위원회가 23일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앞으로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는 생성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순환출자란 같은 대기업집단 소속 A기업이 B기업에 출자하고, B기업이 다시 C기업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A기업을 소유한 총수 일가가 B와 C기업까지 지배하는 구조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적 그룹 총수들은 이 방식을 통해 적은 지분으로 전체 그룹의 경영권을 갖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이후 69건의 신규순환출자 20건을 분석한 결과 부실계열사 자금지원(8건), 편법적 상속·증여(3건) 등 절반 이상이 건전한 기업지배구조에 역행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지적했다.
순환출자 금지는 노무현정부 때부터 시도했지만 기존 순환출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여야와 재계 간 시각차가 커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었다.
박근혜정부도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지만 경제민주화보다 경제 살리기에 무게가 실리면서 연내 입법화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순환출자를 악용한 ‘동양사태’가 터지자 여야 간에 순환출자의 폐해를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정무위는 “앞으로 신규순환출자를 통한 부실계열사 지원, 계열사 부실에 따른 기업집단 전이, 경영권의 편법 상속 등 폐해를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기존순환출자 인정, 신규도 예외 폭넓게 허용=이번 개정안에는 합병 등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신규순환출자에 대한 예외를 폭넓게 인정했다. 기존순환출자 고리 내 계열회사 간 합병은 신규순환출자로 보지 않고 제한 없이 허용하고, 기업구조조정 과정의 신규순환출자 역시 3년간의 해소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여기에 기존 순환출자도 인정되면서 당장 재계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최근 삼성생명을 통해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739만주를 인수하면서 지주회사 체제 전환 움직임을 보이는 등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기존 순환출자 해소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면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순환출자 금지 대상을 법 개정 이후로 한정하면 기업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법 개정으로 기존 순환출자 구조까지 모두 끊어야 했다면 당장 필요한 자금이 수조원에 달할 수도 있어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법 개정으로 인한 기업 경영상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계 관계자는 “향후 신규 순환출자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기업의 투자자금 조달이나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생기면서 경제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홍보본부 임상혁 본부장은 “실익은 없고 경제에 불이익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노용택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