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형사 소송 절차 깜빡·참여재판 고지 깜빡… 한 사건 두 번 실수 ‘황당 판사님들’
입력 2013-12-24 02:31
법원이 형사 재판 절차를 지키지 않아 한 사건이 1년 넘게 결론 없이 공회전하고 있는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법원의 잇단 실수로 피고인은 세 차례나 재판을 받았지만 1심부터 새로 재판을 받게 됐다.
A씨(49)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수원시 영화동의 한 술집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다 여자 손님의 뺨을 때렸다. 맥주병을 들고 남성 손님을 위협하다 밀쳐서 뇌진탕을 입히기도 했다. 지구대에서도 경찰관을 발로 차며 난동을 부렸다. 폭력·상해·공무집행방해 등 전과 9범이었던 A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상습집단·흉기 등 상해) 등의 혐의로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혐의는 법정형 5년 이상에 해당했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정형 1년 이상의 사건은 판사 3명이 심리를 맡는 합의부에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사건은 수원지법의 형사단독 B판사에게 배당됐고, B판사도 이를 간과하고 혼자 재판을 진행했다. B판사는 지난 2월 “A씨의 습관적 폭력이 인정된다”며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A씨가 항소해 사건은 지난 3월 수원지법 형사항소C부에 배당됐다.
그러나 형사항소C부는 A씨의 재판이 합의부에서 진행됐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B판사의 판결을 파기하고 1심부터 다시 재판을 진행했다. 심리는 7개월여 동안 이어졌고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이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의 1심 판결을 새로 선고했다. 하지만 법원의 실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씨는 다시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올라왔다. 서울고법은 지난 3일 첫 공판에서 수원지법 형사항소C부의 실수를 밝혀냈다. 재판부가 A씨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안내하지 않았던 것. 참여재판법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원하는지 물어보거나 서면 등으로 확인하고, 안내서도 송달해야 한다. 하지만 A씨는 아무런 절차도 고지받지 못했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결국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판절차가 위법했고, 소송행위도 무효가 된다”며 “A씨가 참여재판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이상 잘못을 지나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는 구속된 상태에서 세 번째 1심 재판을 받게 된 셈이다.
법원 관계자는 “처음 사건을 배당할 때 문제가 있었고 B판사도 재배당 요구를 하지 않는 등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형사항소C부도 항소심 재판부이다 보니 참여재판을 고지하는 절차를 빠뜨린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지역의 한 변호사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국가 자원을 낭비한 황당한 실수”라며 “공판 과정에서 실수를 밝히지 못한 검찰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