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생의 끝자락, 위로를 전하고 떠나다… 어느 동양화가의 ‘웰다잉’
입력 2013-12-24 02:44
폐암 고통 속 한 점 한 점…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회
눈을 잘 뜨지도 못하면서 방문객들에게 나지막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회에 찾아온 관람객을 그는 정중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호스피스 병동의 동료 환자들은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응시하며 제각기 엷은 미소를 띠거나 눈시울을 훔쳤다. 위안과 감동을 받은 흔적이 역력했다.
마지막까지 폐암 말기의 고통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동양화가 고 한윤기(77·사진)씨. 40년 경력의 화가였지만 원래는 사진작가였다. 1970년부터 카메라를 한 대 사서 전국의 바다와 강, 산을 돌며 렌즈에 담았다. 사진에 미쳐 있던 어느 날 ‘자연을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붓을 들었다. 한 점 한 점, 먹을 갈아 그려낸 300여점 작품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좋아서 그렸지만 주목받는 화가는 아니었다. 88년 충남 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 개관 때 작품을 전시하긴 했지만 정식 전시회는 열지 못했다. 2남2녀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도 힘에 부쳤다. 여기저기 이삿짐 날라주고 번 돈으로 가족을 먹였다. 낮엔 짐 나르고 밤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한번도 팔지 않았던 한씨는 가장이자 예술가로 평생을 동분서주했다.
그림 인생이 위기에 처한 건 2004년이다. 명치 부분이 쓰려 찾아간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한씨는 “아파서 병원에 있지만 나무 꽃 강을 그리면 내가 자연의 한복판에 누워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병 중에 그린 작품 10점은 이전 그림보다 선이 더 굵고 단단하다. 한 작품에 산과 바다, 하늘과 강이 한꺼번에 들어가기도 했다. 좀처럼 없던 일이다. 아들 광태(57)씨는 “가족에게 신세한탄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였지만 마음 속 안타까움은 우리보다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씨는 9년간의 투병 끝에 지난달 26일 서울 신내동 서울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2주 만에 거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미술치료’ 시간은 그에게 또다른 삶의 이유였다. 그의 놀라운 그림 솜씨를 본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송애란 코디네이터는 한씨 가족과 상의한 끝에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서울의료원 1층 로비. 서울 등촌동 한씨 자택에 있던 그림 50점이 공수돼 전시회가 열렸다. 링거를 꽂고 지나가던 환자, 휠체어를 미는 보호자, 피곤해 보이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감상했다.
이영숙(53)씨는 “입원한 어머니 간병 중인데 그림을 보니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1층에 내려온 한씨는 관람객들에게 일일이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줄지어 창공을 나는 갈매기떼, 짙은 안개 속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웅장한 산세, 첩첩산중에 홀로 남겨진 초가집의 연한 흔적…. 그림들을 소중히 어루만지던 한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6시간 동안 열린 전시회가 끝나자 그는 아들에게 “최고의 영광이었다.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틀 뒤인 22일 오후 한씨는 그토록 사랑했던 자연을 떠나 영면했다. 영정 옆에는 끝없이 펼쳐진 산자락을 낚시꾼과 뱃사공이 바라보는 그림이 놓였다. 그가 전시회에서 뱃사공을 가리키며 “이게 나”라고 했던 작품이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