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임영보 老감독의 눈물… 일본 농구도 함께 울었다
입력 2013-12-24 01:31
산전수전 다 겪은 팔순의 ‘호랑이 감독’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일본여자농구(WJBL) 야마나시 퀸 비스(Queen Bees)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임영보(80) 감독은 1980년대 국내 실업여자농구에서 국민은행을 최강으로 조련한 ‘우승 제조기’다. 국가대표 감독으로 1983년 브라질 세계선수권에선 한국을 4강에 올렸고, 97년 방콕 아시아선수권에서는 9년간 중국에 빼앗겼던 아시아 정상을 되찾아왔다.
98년 66세에 바다 건너 일본 여자농구 3부 리그 일본항공(JAL) 래빗을 맡은 지 2년 만에 1부 리그에 올려놓더니 2005년엔 마침내 우승을 거머쥐었다. JAL 래빗의 스토리는 일본에서 소설(날아라 래빗)과 영화(플라잉 래빗)로도 제작됐다. 하지만 JAL 래빗은 2010년 경영난 때문에 해산했다. 팀 해체 후 임 감독은 니가타현에서 초·중·고 지도자를 가르치는 순회코치로 일했다.
이어 일본여자농구 ‘만년 꼴찌’ 팀인 야마나시와의 인연이 찾아왔다. 2011∼2012시즌에 WJBL 2부 리그에서도 1승15패를 당한 야마나시는 1, 2부가 통합된 지난 시즌에는 22전 전패라는 씻지 못할 불명예를 안았다.
야마나시 경영진은 지난 3월 초 임 감독에게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그들은 “퀸 비즈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라며 “당신이 안 맡겠다면 차라리 문을 닫겠다”고 했다. 임 감독은 짐을 떠안았다. 이어 4월부터 또 한 번 꼴찌 탈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주전 다섯 명의 평균 신장은 1m72, 팀의 마스코트는 ‘여왕벌’이다. 하지만 현실은 리그 최단신의 땅벌 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시민구단인 야마나시는 최근 경기 악화로 결국 이번 시즌이 끝난 뒤 해체하기로 사실상 결정됐다.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하던 임 감독과 그를 따르던 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임 감독은 22일 홈에서 열린 하네다와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우리가 그래도 어렵게 시즌을 준비해왔는데 이런 식으로 끝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독려했고 마침내 ‘1승’을 거뒀다. 35연패를 당하다 거둔 뜻 깊은 승리였다.
임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수들뿐 아니라 구단 관계자, 관중까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보다 더 값진 승리였다”며 감격해했다.
임 감독의 포부는 일본 종합선수권대회에서 8강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팔순의 나이에 해체가 확정된 팀을 떠안은 그의 꿈이 실현될 지 일본 농구계가 주목하고 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