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9층이’라 불린 여인 이야기
입력 2013-12-24 01:30
최근 40대 주부인 A씨와 50대의 B 집사(여성)를 함께 만났다. 대화 가운데 ‘착한’ 외모의 A씨가 인생여정을 이야기했다.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 오랜 세월동안 신앙생활을 한 그녀는 암으로 고생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다. 7남매 중 막내인 A씨는 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아 해야 했다. 간병하면서 무심한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실망을 한 그녀는 어머니 소천 이후에 가족들은 물론, 사람들과의 접촉을 아예 끊었다. 마음의 병은 깊어 갔고 도무지 살아 갈 소망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파트 9층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루 종일 ‘그냥 떨어져버릴까’를 묵상했습니다. 죽음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내 의지로 삶을 마감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대편 베란다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예쁜 단독주택이 지어졌고 마당에 강아지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그때부터 매일 강아지를 보았다. ‘몽’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몽을 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밖으로 나가 그 집 앞까지 갔다. 벽을 사이에 두고 몽과 한없이 이야기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강아지와 이야기하는 여인을 동네 사람들은 ‘정신 이상자’로 여겼음이 분명하다.
A씨가 몽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집 주인인 B 집사는 창문에서 조심스레 그녀를 살폈다. 직감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내준 사람임을 느꼈다. A씨가 올 때마다 B 집사는 부러 몽을 바깥으로 나가게 했다. 한참을 지난 후에 B 집사가 밖으로 나가 A씨를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줬다.
A씨는 죽고 싶었던 그 순간에도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일 수도, 그저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죽더라도 만나고 죽고 싶었습니다.” B 집사는 A씨가 소망하던 ‘한 사람’이 되었고, 궁극적 실재인 또 다른 ‘한 분’을 만나는 다리 역할을 해줬다.
A씨는 B 집사가 나가는 소그룹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에서 말씀을 들으며 회복되기 시작했다. 생명의 말씀에는 확실히 치유의 힘이 있었다. 다시 해맑은 웃음을 찾았다. 모임 리더가 A씨를 ‘9층이’라고 부르며 놀려도 환하게 웃을 정도로 회복이 됐다. A씨 가족과 B 집사 가족들은 새로운 ‘가족’이 됐다. 한 사람의 회복은 개인으로 끝나지 않는다. A씨의 회복으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었던 형제·자매간의 화해가 이뤄졌다. 직장암 3기였던 큰오빠도 말씀을 통해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다.
A 집사는 지금 말씀을 자신 내면에 집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우울의 영, 죽음의 영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저는 ‘9층이’였습니다. 매일 9층에서 ‘떨어질까, 말까’를 고민했죠. 그러나 영의 말씀이 들어오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저를 살려 주셨답니다.”
대화 중 A씨와 B 집사를 보니 영락없는 다정한 자매였다. 그들은 ‘예수의 피’로 하나 된 영의 가족이었다. 그렇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 ‘9층이’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리는’ 한국 교회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절규하며 교회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한국 교회, 한가한 ‘육의 노름’일랑 그치고 먼저 그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살리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