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만날 사람] 산악 사진가 조준씨 “타임 랩스 위한 배낭만 45㎏ 한국 명산 홍보 보람에 거뜬”
입력 2013-12-24 01:48
모니터에 뜬 한 동영상. 영상은 모니터 중앙에 위치한 산에 초점을 맞춘 채 산 위쪽에서 여러 겹으로 포개져 흐르는 구름을 비춘다. 이어 화면은 해가 떨어지며 하늘빛이 밝은 노랑에서 진한 빨강이 됐다가 이내 깜깜한 밤이 되는 장면을 담았다가 단 2분 만에 끝을 맺는다. 이것은 시간의 흐름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타임 랩스(Time Lapse) 기법 영상으로 산악 사진가 조준(35·사진)씨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작업이다. 그가 올해 가을 완성한 울릉도 타임 랩스가 얼마 전 ‘대박’을 터뜨렸고 이에 조준씨는 타임 랩스 사진가라는 별칭을 얻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조준씨는 원래 산악 사진가로 유명하다. 그는 2010년 모 주류 업체가 총 5억원의 상금을 걸고 개최한 킵워킹펀드 공모전에서 자신이 찍은 산 사진으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또 2011년 서울 정독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에는 관람객 3000명이 몰리기도 했다. 이는 오로지 산 사진으로 세운 흥행 기록으로 당시 조준씨는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30년 전 산 사진전 수상작이 요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새로운 산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3년 전부터 타임 랩스를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한 거는 1년 정도 되고요. 타임 랩스는 사진에서 온전히 보여줄 수 없었던 동감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반면에 일반 사진 촬영 보다 몇 배 힘들고 어렵다는 게 흠이지요.”
타임 랩스를 이용한 사진가들이 국내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유독 그의 작업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힘든 촬영 과정이 영상 안에 그대로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가 산 사진을 찍기 위해 챙기는 장비만 무려 30㎏ 정도. 거기에 산에서 생활할 장비까지 더하면 배낭 무게는 족히 45㎏을 넘긴다. 이 짐을 오로지 혼자서 지고 산기슭부터 꼭대기까지 온종일 누비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또한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몇날 며칠 산에서 머물러야 하니 웬만한 인내심 갖고는 좋은 영상을 얻기란 쉽지 않다. 이런 고행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산 사진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20대 중반에 가입했던 사진 동호회의 한 회원이 산 사진을 찍었어요. 그를 따라 나선 게 계기가 됐고요. 그때 산이 보여주는 웅장하고 역동적인 모습에 감동 받았어요.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산 사진을 찍게 된 동기이고요. 산꼭대기에서 운해가 갈라지는 걸 보고선 거기에 압도됐던 때가 기억나는 군요. 그 장면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네요.”
전라북도 익산이 고향인 조씨는 사실 산처럼 굴곡진 인생길을 걸어왔다. 초등생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탓에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이후 검정고시로 대학입시에 붙었지만 등록금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다. 일찍부터 막노동, 신문배달, 컴퓨터 부품관련 업체 등지에서 일하다가 마지막엔 중견기업 쇼핑몰 사진부 팀장자리까지 올랐다. 지금은 오로지 산 사진과 타임 랩스에 집중하고 있다. 올 6월 결혼한 새신랑이기도 한 조씨는 현재 수입이 변변치 않아도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기록하며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말한다.
윤성중 쿠키뉴스 기자 sj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