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아가들, 여보" 순천시 민원불통으로 분신사망한 40대 남성의 절규

입력 2013-12-23 16:49

[쿠키 사회] “소송할 비용으로 공무원에게 돈을 쓰지 그랬나구요? 그 돈 있으면 불우이웃 돕기 해야죠. 돈!돈! 하지 마시고, 술!술! 하지 마십시오.” “소송을 안했으면 해 줄 수 있었다구요? 다른 민원인은 소송을 안 해서 해줬고 저는 소송을 해서 못해준다면…”

전남 순천시 민원업무의 불통을 외치며 지난 20일 순천시청 현관 앞에서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울 붙인 뒤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민원인 서모(43)씨가 마지막 남긴 말이다.

“넉넉하지 못하고 쪼들린 생활에도 항상 웃고 같이 해준 당신과 생을 같이 하지 못해 미안해. 귀한 딸 데려와 고생만 시키고 정말 미안해. 부르기도 아까운 우리 딸 엄마 잘 도와주고 사랑해요. 아빠 없으면 우리 아들이 대신 아빠인거 알지? 게임 조금만하고... 씩씩하게 잘 커야 한다. 사랑해! 아가들. 여보.”

얼마나 억울했으면 A4용지 12장에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함을 뒤로한 채 자신의 마지막을 검은 펜글씨로 또박또박 써내려 갔을까.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애달픈 사랑을 지키는 용기보다 죽음을 택한 서씨는 “정말로 억울하고 원통해서 죽음으로써 억울함을 풀고 싶다”고 마지막 심경을 유서에 남겼다.

“경지정리 된 곳은 우량농지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경지정리가 돼도 우량농지가 아니라고 하시고... 우량농지라도 농업과 근린생활 시설은 된다고 했다가, 저는 농업용마저 안된다고 했다가, 다른 곳은 농업용이 아니라 소매점인데도 된다고 하니...”

그는 “‘공무원들이 맘먹으면 안 될 것도 없고, 될 것도 안된다’는 말 뼈저리게 느끼고 간다”며 공무원들의 빈정거림과 모멸감을 보여준 태도와 순천시의 불합리적이고 불공한 행정에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허가민원과 직원들이 처음에 ‘불가’했다가 나중에 소매점을 음식점으로 변경해 준 신도심 지역의 용도변경의 건 잘 아시죠? 술이 넘어가시던가요? 그거 술이 아니라 시민의 피눈물입니다.” 서씨는 이와 같이 다른 곳의 용도변경 허가에 대해 공무원들의 접대 받은 사실을 암시하며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특히 “시장님과 대화를 하면 소통이 되지만 다시 담당공무원들과 대화를 하면 ‘시장님 말씀은 민원인 달래려고 하는 말이니 곧이듣지 말라’는 공무원들과는 불통”이다며 순천시청 내의 조직불통에 대한 여운도 남겼다.

서씨는 “자신의 부친이 지난 4월 담당국장을 11차례에 걸쳐 면담을 갔으나 한차례도 못보고 왔다”며 민원인의 간부공무원 면담에 대한 높은 문턱도 실감케 했다.

그는 “불합리한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면 안 됩니다. 공무원의 무관심과 묵인에 시민은 죽어갑니다”고 생을 놓는 마지막 글귀에서 절규했다.

순천시는 이번 분신사건이 터지자 민원인에게 충분히 이해를 시키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앞서 서씨는 지난 20일 오전 11시45분쯤 순천시청 현관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3도 화상을 입은 서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성가롤로병원을 거쳐 서울성모병원으로 후송됐으나 21일 오전 7시45분쯤 끝내 숨졌다.

서씨는 2008년 4월부터 순천시 야흥동 2997㎡ 부지에 주유소와 가스충전소 등 4차례에 걸쳐 농지전용을 위해 민원신청 했으나 불허 처분됐다.

이후 전남도와 광주지법, 대법원 등 6차례에 걸쳐 행정소송과 심판을 청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씨는 지난 3월부터 22일 동안 시청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순천=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