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2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건물을 무려 12시간여에 걸쳐 한 개 층씩 진압하며 13~16층에 있는 민주노총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은 물론 옥상까지 수색했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를 한 명도 찾지 못했다. 강제 진입을 예상한 지도부가 새벽에 건물을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민주노총 본부에 사상 처음 진입한 경찰은 결국 헛발질만 하고 말았다.
경찰은 오전 8시40분쯤 병력 5500여명으로 건물을 에워쌌다. 오전 9시40분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민주노총에 제시했고, 노조 측이 영장집행 협조를 거부하면서 본격적인 진입 작전이 시작됐다. 경찰이 체포조 600여명을 투입하자 건물 입구는 아수라장이 됐다. 노조원 150여명은 건물 1층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위층 사무실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다.
오전 11시10분쯤 경향신문사 1층 동쪽 출입구 유리문이 깨지며 건물 내부로 경찰병력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건물 주변에는 투신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해 에어매트리스 등이 설치됐다. 노조원들은 진입하는 경찰을 향해 깨진 유리조각을 던지고 소화전으로 물을 뿌리며 격렬히 저항했다.
낮 12시30분 1층 내부 자동문까지 부순 경찰은 최루액을 분사하며 입구를 막아선 노조원들을 한 명씩 끌어내 연행했다. 함께 농성하던 이상규 김재연 등 통합진보당 의원들은 격리 조치됐다. 강하게 저항하는 노조원은 경찰관 4~5명이 팔다리를 잡고 끌어냈다. 여성 노조원 연행을 위해 여경도 다수 투입됐다. 오후 1시30분쯤 경찰은 1층의 노조원을 대부분 연행하고 출입구를 확보했다.
노조원들이 계단 난간을 두드리고 고함을 치며 저항하는 통에 건물 내부는 쇠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한때 일부 노조원이 LP가스통 등 위험물질을 소지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경향신문 건물 주변과 서대문 사거리 일대에서는 강제 진입에 항의하려 모인 노조원·대학생 등 수백명이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민주노총은 낮 12시40분쯤 전국 조합원들에게 “수도권에 있는 조합원은 즉시 민주노총 본부로 집결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민주노총 침탈 규탄대회를 규모와 상관없이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열고 오후 4시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라”고 주문했다.
경찰은 오후 내내 건물을 한 개 층씩 ‘접수’해 올라갔다. 계단 등에서 저항하는 노조원들을 진압하며 마침내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13층까지 진입한 것은 오후 5시40분. 경찰은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13~16층과 옥상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철도노조 지도부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오후 8시쯤 잠겨 있던 14층의 한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열었을 때 안에 있던 건 시민단체 관계자 100여명뿐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데리고 사실상 ‘빈손’으로 건물을 내려왔다.
14층에 있던 민주노총 간부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찰이 하루 종일 난리 친 이 건물에 철도노조 체포 대상자는 단 한 명도 없다”며 “경찰이 완전히 낚인 거지”라고 비꼬았다.
경찰의 강제 진입에 대한 위법성 논란도 제기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송영섭 변호사는 “체포영장만 갖고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주거지를 부수고 들어갈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안전장치 없이 55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한 것은 체포에 필요한 범위 내의 병력을 투입토록 한 비례성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리한 지시를 한 경찰 간부와 현장 책임자 등에 직권남용, 재물손괴, 불법체포의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형법에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주거 등을 수색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면서 “절차적 하자가 없고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다고 추정되는 상황에서 (체포 시도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지법 안동지원은 이날 오후 11시 전국철도노조 영주지방본부 간부 윤모(47)씨에 대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철도노조 간부가 구속된 것은 윤씨가 처음이다.
조성은 전수민 기자
[경찰, 민주노총 첫 강제 진입] 유리창 깨고 최루액 쏘며 들어갔지만…
입력 2013-12-23 03:47 수정 2013-12-23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