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의 힘 보여줄 것”… 학고재갤러리 상하이에 새 전시장 마련

입력 2013-12-23 02:19


미술시장이 호황을 이뤘던 2005∼2007년 한국 화랑들이 중국에 대거 진출했다. 아트사이드, 현대, 아라리오, 표 등 메이저 갤러리가 베이징에 거점을 두었고 샘터와 박여숙 등 굴지의 화랑이 상하이에 분관을 마련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시장을 겨냥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2010년을 전후로 대부분 철수했다.

올해로 개관 25주년을 맞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가 상하이에 새 전시장을 열었다. 상하이 예술특구 모간산루(莫干山路) 50호(M50) 중심부에 위치한 2층 건물의 1층에 자리 잡았다. M50 내 상업화랑 중 두 번째 규모(233㎡)다. 중국인의 자국 작가 선호 경향 때문에 재미를 보지 못하고 화랑들이 줄줄이 철수한 마당에 학고재가 상하이에 전시장을 낸 것은 일종의 도전이다.

우찬규(56) 학고재 대표는 “미술은 돈이 있는 곳에 따라 움직인다. 한국 화랑이 상하이 경제가 활성화되기 이전에 섣불리 진출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고 경제도 살아나 적기”라고 말했다.

상하이에는 480여개의 갤러리가 운영 중이며 연간 미술시장 규모는 51억 위안(약 8900억원)에 달한다. 갤러리마다 평균 2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학고재상하이의 첫 기획전 ‘시각과 맥박(眼壓)’은 지난 20일 개막했다. 내년 2월 23일까지 계속되는 개관전에는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유망작가 홍경택(45) 이세현(46) 김기라(39)가 참여했다. 지난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연필 1’이 9억7100만원에 팔려 한국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홍경택은 대표작 ‘연필’ 시리즈 3점을 출품했다.

‘붉은 산수’로 잘 알려진 이세현은 기존의 작품 이미지에 여름 해변 풍경과 작가 가족의 모습 등 일상적인 장면, 제주 4·3사태와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을 함께 배치한 신작을 걸었다.

김기라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캠코더를 끈에 묶어 베이징, 런던, 도쿄 등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도시 풍경과 캠코더를 건물 위에서 80∼90m 아래로 떨어뜨려 이미지를 기록하는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인다.

개관 첫날 관람객과 취재진 등 300여명이 몰려드는 등 반응이 좋았다. 조선족 미술평론가 윤길남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교수는 “인물 위주인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작품들로 신선한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상하이에 있는 한국 갤러리는 학고재가 유일하다.

우 대표는 “상하이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학고재의 ‘법고창신(法古創新)’ 목표와 잘 어우러진다”며 “이런 특성을 살린 작품을 통해 한국미술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상하이=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