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진정한 성탄의 의미
입력 2013-12-23 01:32
마태복음 1장 21절
죄 많은 이 세상에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에게 기쁨이고 희망입니다. 예수님만이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인간이 의로워서도, 합당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셨으며, 아무 조건 없는 선물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 앞에 인간은 감사해야 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교회들은 성탄절이 다가오면 많은 행사와 기쁨의 시간들을 보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조차 기쁨의 시간들을 보냅니다. 이미 오래전에 성탄절이 상업화됐고, 상술에 진정한 성탄의 의미조차 묻혀버린 현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다시 성탄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며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과는 다른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감사한 일이며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어떨까요?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고초와 핍박과 죽음의 길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괴로우셨을까요. 인간은 기뻐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아파하셨습니다.
자식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 놓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완악함, 인간 스스로는 회복될 수 없는 타락을 보시며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총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며, 성탄을 그저 지나가는 기쁜 축제의 날로 여긴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넘쳐나고, 신앙생활에서도 나와 우리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논리에 참된 예수님의 마음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6·25 피란 시절, 한 어머니가 자식들을 먹일 양식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아 양식을 샀습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어린 자식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밥이라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먹을 수 없었습니다. 삭둑 잘라진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큰아이는 어머니를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주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감격 없이, 감사하는 마음 없이 마냥 기뻐만 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 앞에, 우리는 더욱 겸손하고 감사해야 하며,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고 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나와 교회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낮고, 더 넓은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2013년의 성탄은 겸손히 나누고 섬기는 축제가 되어 온 누리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길 축원합니다.
김대광 목사 (분당 새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