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민주노총 첫 강제진입] 집단갈등 못 푸는 한국사회
입력 2013-12-23 02:30
정부가 22일 철도노조 파업 지도부 검거를 위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경찰력을 투입한 것은 향후 사회 갈등 상황에서도 ‘법과 원칙’을 엄정히 세워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즉각 “노동운동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정권 퇴진운동 및 28일 총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노(勞)와 정(政), 즉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이해세력과 갈등 조정자의 극한 대결 양상이 빚어져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체계 개편 등 산적한 노동 현안을 풀어야 하는 노사정 대화는 사실상 무기한 중단 상태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이날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 진입했다. 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된 것은 1995년 설립 이후 처음이다. 이전 정부는 민주노총에 대한 경찰력 투입을 극도로 자제했다. 노동운동의 중핵이라는 상징성 탓에 노동계와의 전면전으로 해석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 일각에선 정부가 민주노총 무력화 절차를 밟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노총의 핵심 세력인 전교조, 전공노 등 공공부문을 법외노조로 만들어 활동을 제약한 뒤 철도, 화물연대 등 운송 부문에도 타격을 가해 재기불능 상태에 빠뜨리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법과 원칙’만 강조한 나머지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정부 방침이 곧 최선이라는 일방통행식 정책 집행이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조 역시 정부의 법 집행을 무시함으로써 대화보다는 대결국면으로만 끌고 가려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내년엔 통상임금 산정 범위 등 임금체계 개편과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 정년 60세 법제화와 연계한 임금피크제 도입, 고용률 70% 등 노사정 대타협이 절실한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노·정 관계가 최악의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주요 현안에 대한 노동계의 이해와 양보를 이끌어내기 어렵게 됐다.
영리병원 도입 논란을 둘러싸고 의료계 종사자와 시민단체들이 집단 갈등을 나타내고 있고, 부채 감축이 핵심인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공공노조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향후 갈등이 본격화되면 이번 정부의 대응에 비춰볼 때 이들 부문에도 정부가 강경 대응 일변도로 나올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정부와 이해당사자가 대화와 타협을 외면하고 대결과 투쟁으로 치닫는다면 국론분열 등으로 사회적 비용이 상승하고 산업현장에선 노동력 손실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선정수 이도경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