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월세 가속… 무주택서민 “보증금이 全재산” 비상

입력 2013-12-23 01:28


최근 들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늘면서 저소득 무주택 가계가 유동성 위기로 내몰고 있다. 금융자산 대부분이 임대보증금으로 묶여 있어 월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질 경우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이 22일 발표한 ‘우리나라 가계자산 구조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총자산은 평균 3억1495만원이지만 이 중 부동산 실물자산, 부채 등을 뺀 순금융자산은 2564만원에 불과했다. 총자산 대비 금융자산 비중은 작년 기준 24.9%로 미국(68.5%) 일본(59.1%) 호주(38.7%)에 비해 크게 낮았다.

금융자산 부족에 따른 소득계층별 위험도는 달랐다. 고소득층(소득 4∼5분위)은 금융자산 비중이 25.7%로 높지 않지만 순금융자산만 4416만원에 달했고 실물자산 가치(4억55만원)에 비해 부채(9403만원)도 적었다. 현금이 필요할 때 실물자산과 금융자산 간 전환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셈이다.

저소득층(소득 1∼3분위)은 주거형태별로 편차가 컸다. 우선 자가주택 가구는 금융자산 비중이 11.9%로 매우 낮지만 실물자산(2억2581만원)을 금융자산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주택연금 등의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전세거주 가구는 금융자산 비중이 65.7%로 높지만 대부분 임대보증금으로 실물자산에 묶여 있다. 특히 최근 월세전환율이 6∼9%에 달해 월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 부채상환 등 시급한 자금 수요가 생길 때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월세거주 가구의 경우 순금융자산이 가계당 957만원에 불과해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나타났다.

박종상 연구위원은 “개인 임대사업자들은 실물자산을 금융자산으로 바꾸기보다 실물자산을 유지한 채 장기적 소득을 확보하려고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저소득 무주택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들어 개인회생 신청 건수도 처음으로 10만건 돌파가 확실시되는 등 재정적 고통을 겪는 서민 가계가 갈수록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전국 법원이 개인회생 신청을 접수한 건수는 9만6412건으로 2012년 9만368건을 이미 추월했다. 개인회생은 법원이 파탄에 직면한 개인 채무자의 채무를 재조정해 파산으로부터 구해주는 제도다.

현 정부의 대표적 서민지원 공약인 국민행복기금 신청도 많아졌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11월 말까지 채무조정 신청 접수를 한 결과 모두 26만4000명이 신청했고 그 가운데 23만2000명에 대해 지원을 확정했다. 11월 한 달 사이에 신청자는 1만7000명이나 늘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