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하나님의 침묵

입력 2013-12-23 01:28


“침묵이란 단순히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다.” ‘침묵의 세계’에서 막스 피카르트가 했던 말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침묵이란 결코 수동적인 표현 방식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의 방식일 수 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가장 ‘강력하게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과 엘리야 사이의 소통 관계에서 확인했다.

하나님께서는 비겁하게 도망치다가 로뎀 나무 아래 지쳐 쓰러진 엘리야를 향해 침묵하셨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침묵을 보라. 어쩌면 그를 향하여 가장 많은 책망과 훈계의 말을 쏟아 놓아야 할 순간이 아닌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엘리야의 본성이 그야말로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 그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그냥 보아 넘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단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엘리야를 조용히 어루만지시며 음식을 먹이실 뿐이다. 엘리야는 이 침묵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강력한 위로의 메시지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침묵의 언어가 들려준 메시지가 무엇인가? 먼저 ‘나는 너의 고통과 연약함을 깊이 이해한다’는 메시지다. 타인의 고통과 한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너진 자를 향해 던지는 비난의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결코 참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 말을 참을 수 있는 법이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이기적 본성을 아신다. 영적 전사의 화려한 겉옷 속에 감춰진 이기적 본성을 하나님은 잘 아신다. 엘리야가 자신의 모습으로 실망하여 쓰러지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너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무언의 언어였다. ‘오래된 새길’에서 김기석 목사의 간증이 재미있다. 어린 시절, 하루는 아버지께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오기와 반발심으로 이를 악물고 참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때리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울먹이시며 하시는 말씀, “네 이놈, 아버지가 때리면 잘못했다고 하고 안 맞든지, 아니면 빨리 도망이라도 칠 것이지 이걸 다 맞고 있어? 이놈아!” 아버지의 이 말에 그만 아들은 솟구치는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쳤단다. 때리면서도 여전히 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아버지. 때리면서도 아들이 제발 도망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 이것이 무너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엘리야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 하나님의 마음이 침묵의 언어로 승화되고 있다.

엘리야를 향한 하나님의 침묵은 너무도 멋지다. 이 멋진 침묵의 언어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하신다. 우리의 고통을 아시며,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메시지다. 성탄절이 가까우면 세상은 시끄럽다. 그러나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침묵의 소리가 가깝게 다가오는 성탄, 그런 따뜻한 성탄을 맞이하고 싶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