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변비, 90%는 음식 조절만으로 ‘뻥’
입력 2013-12-23 01:27
주부 김진옥(32·가명)씨는 최근 생후 17개월 된 아들이 3일째 똥을 누지 못해 복통을 호소하자 집에서 가까운 K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찾았다. 거기서 관장을 하고 변을 묽게 해주는 약 처방을 받아 아이에게 먹여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어린 아이에게 관장 시술을 자주 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먹이고, 좀 지켜보자”고 말했다. 김씨는 혼란스러웠다. 한 병원에서는 인위적으로 아기의 장을 비우는 걸 별것 아닌 듯 권하고, 또 다른 병원에서는 좋지 않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해서다. 소아 변비,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을까.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지현 교수의 도움말과 미국 웨이크포레스트 의대 소아비뇨기과 스티브 호지스 교수의 신간 ‘우리 아이야뇨증과 변비 거뜬히 이겨내기’(꿈꿀자유)를 참고로 알아본다.
◇소아변비는 대부분 큰 이상 없는 기능성 변비=변비란 배변의 횟수가 적으면서 변이 굵고 딱딱하고 배변할 때 통증이 심해 대변을 보기가 힘들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배가 아파서 소아청소년과를 찾는 어린이 환자 중 25% 정도에서 발견될 정도로 흔하다.
다행히 소아변비는 특정 질환에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 ‘기능성 변비’가 90% 이상이다. 기능성 변비는 장의 구조나 기능에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잘못된 배변습관 등으로 생기는 변비다.
대부분 물기 없이 단단해진 대변 때문에 배변 시 힘이 들고, 경우에 따라선 항문도 아프기 때문에 아이가 계속 배변을 참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면 장의 감각수용기가 무뎌지고, 그로 인해 배변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기 쉽다.
이런 기능성 변비는 배변습관을 교정해 주는 것이 약이다. 그러자면 우선 단단한 대변을 풀어줘야 한다.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여 수분과 섬유소 섭취를 늘려주는 대신 우유 섭취는 조금 줄여주는 것이 좋다.
문제는 젖먹이 아이들에게는 이 방법을 엄격히 적용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 이 때는 삼투압을 이용해 단단한 대변을 물기가 많고 배변이 쉬운 대변으로 바꿔주는 ‘대변연화제’라는 약을 써봄직하다.
◇원인은 다양…생우유 많이 먹여도 문제 =소아변비를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흔히 감기에 걸렸을 때 잘 먹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변비가 올 수 있다. 노는 데 열중해 변보기를 잊어버리거나, 낯선 곳에서 변보기를 꺼려 억지로 참다가 변비에 빠지는 아이들도 있다. 갓난아기의 경우 변을 볼 때 찡그리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주기를 하는데, 이는 항문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할 때는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새끼손가락으로 아이의 항문에 바셀린을 발라 미끄럽게 해준다.
이유식 시기인 생후 4∼5개월째부터는 아기의 장이 커지는 만큼 섬유질이 많은 채소나 과일류 섭취를 차츰 증가시켜 대변으로 만들어질 소재를 충분히 제공해 주는 게 좋다. 그래야 변도 잘 나오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수분이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따뜻한 물을 자주, 충분히 먹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살이 지나면 밥과 반찬을 주식으로 삼아야 한다. 우유는 하루 두세 컵 정도(500㎖ 미만)만 주는 것이 적당하다. 세 살 이하 소아변비의 가장 흔한 원인은 우유를 너무 많이 마시기 때문이다. 생우유를 너무 많이 마시게 되면 미세한 위 장관 출혈이 생길 수 있고, 우유 외에 먹는 음식의 양이 줄어 섬유질 부족으로 변비를 자초하게 된다.
만 2세 전후가 되면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하게 되는데, 무리해서 너무 일찍 시키는 경우 스트레스로 변비가 생길 수 있다. 성인용 변기에 배변하는 경우에는 적당한 높이의 발받침을 사용해 골반 근육의 수축에 따른 적절한 항문과 직장 각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보호자 임의 관장은 변비 부채질 위험=변비 치료에 흔히 유산균 제제를 많이 사용하는데 사실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물론 대변연화제 등 변을 묽게 하는 약들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보호자가 임의로 관장을 해주는 일도 피해야 한다. 관장은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닌데다가 , 관장을 하는 과정이 아이에겐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기능성 변비를 더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비가 생긴 근본적인 원인이 항문 주변의 통증이나 배변의 어려움, 두려움 때문이므로 관장을 해주기보다는 잘못된 습관을 바꿔주는 게 좋다. 물을 많이 마시게 하고 가급적 몸을 많이 움직이게 함으로써 규칙적인 배변습관을 길들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