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정한 (14) 아시아계 최초 美 상원의원 신호범씨를 양아버지로
입력 2013-12-23 01:32 수정 2013-12-23 10:02
한국인으로서는 물론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상원의원이 된 정치인이 있다. 미국의 워싱턴주 신호범(Paull Shin) 의원이다. 그는 18세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돼 워싱턴주립대학에서 동양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와이대학, 메릴랜드대학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94년 상원의원이 됐고 2006년 선거에서는 미국 정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무투표로 당선돼 정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인들은 신 의원의 정계 진출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분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한인교회를 돌며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많은 교포, 이민 성도들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고 계셨다. 나는 그분의 간증을 한인교회에서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거리의 소년으로 떠돌다 한국을 떠났던 그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숱한 세월을 이겨냈다. 이제 교수를 거쳐 정치인으로 우뚝 선 그의 삶이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에서 큰 존경심이 우러러 나왔다.
나는 그분을 멘토 삼고자 양아버지로 삼길 원했다. 나의 정성과 헌신에 감복하셨는지 승낙해 주셔서 이제 가족들까지 친하게 지내며 전화안부를 묻는 돈독한 관계로 발전했다. 양아버지는 79세지만 여전히 미국 내 입양자녀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그 위치에 비행기 좌석은 항상 3등석을 타셨다. 국민의 세금을 아껴야 한다는 지론에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셨다. 기도하면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 오히려 이것을 제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양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감을 가득 충전 받는다. 생김이 비슷해 진짜 숨겨놓은 아들로 오해도 받지만 ‘대기만성형’이란 점에선 우린 너무나 닮았다.
미국에서 대학교수 자리를 찾으려다 실패한 나는 공부를 더 하기로 해 컬럼비아 대학 사범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이 역시 명문대라 쉽지 않은 입학과정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다. 이곳의 공부와 과제도 엄청났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나는 뉴욕에 가면 미국 최고의 부동산 부호 도널드 트럼프의 빌딩을 쳐다보며 기도한다. “주님, 도널드 트럼프에게 큰 경제적 부를 허락하신 것처럼 저도 미술교육의 세계적인 교육자로 성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2008년, 컬럼비아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논문시험이 통과되자 주님이 선물을 주셨다.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스탁튼 대학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갑자기 온 것이다. 공부하면서 각 대학 조건들을 잘 살펴서 서류전형에 맞추어 교수지원서를 종종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필라델피아에서 그리 멀지 않는 위치였고 아주 조용하고 운치 있는 아름다운 학교였다.
인터뷰를 통과한 나는 이 학교에서 비주얼 아트(Visual Arts)를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뛸 듯이 기뻤다. 나는 오랜 대학생활에서 아쉽게 느꼈던 부분들을 학생들에게 채워주는 교수가 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스탁튼 대학에서 내 수업은 매우 인기가 높다. 다른 대학교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와 가끔 나가며 매우 즐거운 교수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꿈과 용기,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특유의 열정과 정성에 모든 학생들이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올해 초 꽤 오랜만에 한국에 다니러 와 가장 실망한 게 있다. 그것은 아직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벌써 꿈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한탄하며 좌절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런 청년들에게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격려해 주고 싶다. 현실이 막막하고 답답하더라도 꿈과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해 보라고 말이다. 높이 나는 새가 먹이를 더 많이 발견하는 것처럼 도전을 해야 결과가 있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