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잉여

입력 2013-12-23 01:31

대학을 졸업한 지 4년이 지났다. 해외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각종 자격증과 자원봉사 활동으로 이력서를 빽빽하게 채웠다. 그런데 백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고, 간간이 기업체 인턴사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좀처럼 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때를 기다린다고 생각했지만 한발씩 밀리더니 어느새 꽤 멀리 지나쳐버렸다.

올해 초 집을 나왔다. 다 큰 자식이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게 눈치가 보여서다. 요즘에는 한 달에 27만원 하는 고시원에서 지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치킨집 배달원 등으로 생활비를 번다. 번 돈으로 고시원 비용, 식비 등 기본적인 것을 해결하고 나면 PC방에서 밤새워 게임을 하며 현실을 잊고 지낸다. 그는 “나름 노력하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다. 세상에 필요 없는 인생, 쓰다 남은 물건 같은 그야말로 잉여인생”이라고 말했다.

잉여(剩餘)의 사전적 의미는 ‘쓰고 남은 나머지’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에 이어 잉여가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잉여는 쓸모없는 혹은 남아도는 청춘의 상징에서 문화현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잉여를 다룬 영화에서부터 책, 월간지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잉여는 다른 의미에서 ‘의자 게임’과 비슷하다. 제한된 의자(일자리)에 앉지 못하면 원(사회) 밖으로 밀려나는 게임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층(만 15∼29세)이 잉여가 되지 않을 확률, 즉 고용률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우리나라 청년층 고용률은 40.4%였다. 10명 중 4명만 겨우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층 고용률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2005년 이후 전체 고용률과 15% 포인트 이상 격차를 보이고 있다. 우리의 청년층 고용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29위다. OECD 평균 50.9%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꺼번에 많은 젊은이가 의자를 찾지 못하고 잉여 상태로 내몰리는 것은 폭발력 높은 폭탄을 차곡차곡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이 늘면 늘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우리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갈등과 불만이 커지면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도 는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공동체가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은 세계적으로 심각해지는 청년실업 문제를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시한폭탄”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