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잊지 못할 선물
입력 2013-12-23 01:28
매년 이맘때 선물을 교환하는 작은 모임이 있다. 올해는 한 달 전에 미리 선물할 사람 이름을 제비뽑은 뒤 그 사람에게 맞는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면서 2년 전에 한 저자에게 받았던 특별한 선물이 떠올랐다.
12월 어느 날, 택배로 배달된 큼직한 상자를 받았다. “이게 뭐지?” 하면서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는 순간, 깜짝 놀랐다. 상자 안에는 도톰한 미색 털실로 손뜨개 한 이불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발신인 주소를 보니 미국 멤피스다. 나는 그해 가을부터 미국에 있는 한 저자의 부탁으로 에세이집을 편집하고 있었다. 그분이 예고도 없이 직접 손으로 짠 머플러와 이불을 깜짝 선물로 보낸 것이다.
‘아, 이렇게 큰 이불을 짜느라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을까.’ 그 열정과 정성이 놀라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벽돌색과 노란색이 섞인 포근한 털실로 짠 머플러를 목에 두르니 어떤 강추위가 와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 선물을 준 그분의 삶은 좀 특별했다.
40여년 전, 미국에 건너가 숱한 어려움을 겪고 홀로서기에 성공한 뒤 지금까지 한인들이 이민생활에서 겪는 어려운 일들인 교통사고와 세금 문제, 장례식, 결혼식, 보험 처리까지 솔선해서 돕고 있다. 게다가 요리하는 취미를 살려 자신이 출석하는 미국 교회의 온 교인을 정기적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곤 한다. 퍼주는 재미, 사랑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그분에게는 가슴으로 낳은 딸이 있다. 혈액형이 RH- B형이라 아이를 갖지 못했던 그분은 우여곡절 끝에 6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이를 입양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그분에게 크나큰 기쁨일 뿐 아니라 삶 자체였다. 목숨처럼 아끼는 딸은 사랑을 먹고 잘 성장했고, 그분에게 ‘생애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성탄과 연말연시를 앞두고 선물이 많이 오가는 계절이다. 나는 선물의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며, 한 해 동안 특별히 내게 선물이 되어 준 고마운 이들을 떠올려 보았다. ‘내 삶의 퍼즐 한 조각이 되어 준 사람, 내 삶의 흑백 풍경을 컬러로 바꿔 놓은 사람, 내가 성장하도록 좋은 자극을 주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오늘 ‘당신은 내게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윤필교(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