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상장 주기
입력 2013-12-21 01:45
한 학기를 마치며 수강생들에게 백지 한 장씩을 나누어 주었다. 수강생들은 의아해했다. 그 백지에 ‘내가 나에게 주는 상장’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술렁이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모두들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조금 후 한 수강생이 울먹이며 “눈물이 나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언젠가 “나는 나를 위해 살지 못한 것 같아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부모와 형제들을 위해 살았고 결혼해서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살았고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 살았어요”라고 했던 사람이다. 어떤 수강생은 탄식하듯 “나는 내가 나를 칭찬하는 데 이렇게 인색할 줄 몰랐어요”라고 했다.
수강생들은 거의 교회 사모들이다. 그녀들은 정말 열심히 산 사람이다. 결혼 후 사모로 살면서 쉰의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영화관에 가본 적 없다는 사모, 시골 교회에서 온갖 험한 일을 도맡아 했다는 사모, 탈출하고 싶어 공부하러 온다는 사모, 암을 앓고 있는 사모도 있다. 그런데 그녀들은 자신을 칭찬하는 상장을 쓰라고 하니까 선뜻 쓰지 못하고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는 얼굴을 하고 망연히 앉아 있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 후 ‘자기가 자기에게 주는 상장’을 큰 소리로 읽어보라고 했다. 상장을 읽어가는 그녀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녀들은 서로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에게 박수를 쳤다.
한 해를 마감하는 자리에 우리는 서 있다. ‘또 한 해가 가는구나.’ 덧없이 한 해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제대로 살지 못하고 보내게 되는 세월이 회한으로 남기도 한다. 칭찬 받을 것 없는 삶을 산 것도 같다. 며칠이 지나면 2013년의 달력을 떼야 한다. 이 해가 가기 전 ‘내가 나에게 주는 상장’을 써보자. ‘잘 살았다. 여기까지 참 잘 왔다.’ 그렇게 한 해를 산 나를 끌어안고 칭찬해 주자.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