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憲裁, 대법원, 국회의 사금고 된 특정업무경비

입력 2013-12-21 01:27

특정업무경비는 공무원의 쌈짓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감사원이 특정업무경비를 지원받는 수사, 감사, 예산 기관 12곳의 특정업무경비 집행 실태를 표본 점검한 결과 대부분 엉망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침을 어기고 금액이나 지출내역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채 불투명하게 사용한 경우가 수두룩했다.

헌법재판소의 경우 이동흡 전 헌재소장 후보자가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으로 낙마했음에도 개선된 게 거의 없다. 정부가 특정업무경비 증빙요건을 강화하라는 지침까지 내렸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헌재는 올 1∼3월 월정액 외에 추가 비용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특정업무경비인 실비를 사용하면서 집행액의 약 60%를 구체적 내역 기재 없이 재판부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지출했다. 지난해엔 8억4000여만원의 실비 가운데 67%인 5억6000여만원을 구체적 사유 없이 사용했다. 이 전 후보자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구린 게 없으면 사유를 기재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대법원, 국회도 오십보백보다. 대법원은 지난 1분기 실비 27억2000여만원 가운데 80% 가까운 21억6000여만원을 이런 식으로 썼다. 국회는 올 1분기에만 35억8000여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집행하면서 지급일자, 금액, 사유 등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감사원엔 전체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샘플 자료만 내줬다고 한다. 감추고 싶은 게 하나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헌법재판소, 대법원, 국회는 최고 헌법기관들이다. 최고 국가기관들이 이럴진대 국가 기강이 바로 설 리 만무하다. 특정업무경비는 세금이다. 단돈 1원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되는 돈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특정업무경비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도 감사원이 내린 조치는 ‘주의’가 고작이다. 감사를 왜 했나 하는 의문마저 든다. 징계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런 솜방망이 징계는 오히려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