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습지 바우처 사업 2015년 전면 폐지… 암운 드리운 저소득층 유아교육

입력 2013-12-21 01:48

서울 장안동에서 식당을 하는 강모(43)씨는 지난 9월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딸이 다니던 학원 수를 줄였다. 경기 침체로 장사가 잘 안됐던 탓이다. 딸이 또래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된 이씨는 ‘학습지 바우처’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학습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주민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예산이 바닥났다”는 직원 설명에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저소득층 자녀 교육을 위해 정부가 지원했던 학습지 바우처 등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가 중단된다. 보건복지부는 이 서비스 예산을 올해 292억원에서 내년 89억원으로 대폭 줄이고 2015년에는 아예 폐지키로 했다.

학습지 바우처는 경제적 어려움에 배움의 기회가 불평등하게 주어져선 안 된다는 이유로 2007년 하반기 도입됐다. 4인 가족 기준 월평균 소득 470만원 이하인 가정에 만 2∼6세 아이가 있을 경우 1인당 1만5000∼2만5000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학습지 회사에서 제공하는 책 읽어주기, 독서 후 느낀 점 이야기 나누기, 도서 지급 및 대여, 부모 대상 독서지도, 학습지 구독 등의 서비스를 바우처로 이용할 수 있어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 중 가장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학습지 회사의 끼워 팔기나 추가 구매 강요 등의 문제점이 생겨나면서 폐지 절차를 밟게 됐다.

복지부는 대신 기존 지방자치단체의 아동복지나 장애아동 관리 등의 업무에 이를 포함시키고 지역자율형 사회서비스 투자사업 예산을 올해 1200억원에서 내년 1300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 감소분 203억원에 비하면 예산 증액분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다른 부문으로의 예산 전용이 가능해 안정적 지원 여부가 불투명하다. 개별 시·군·구가 사업계획서를 올리고 이것이 받아들여져야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어 지자체별 차이도 크다.

서울시는 올해 시 예산과 정부 예산을 합쳐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 전체 예산으로 40억1209만원을 사용했다. 25개 구청에 평균 1억6000만원이 돌아가는 금액이다. 하지만 서울 강동구는 가장 많은 2억9378만원을 받은 반면 서초구는 강동구의 7분의 1인 4245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예산을 적게 배정받은 지자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기회가 그만큼 적어진다. 해마다 배정되는 예산 규모도 달라서 서둘러 신청하지 않으면 서비스가 조기에 마감돼 이씨처럼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복지부 관계자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부산시의 ‘동화야 놀자’ 사업처럼 다른 지자체도 나름의 사업 계획을 세워 잘 운영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지침은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의 성공 사례를 방패막이 삼아 가뜩이나 자녀 교육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는 저소득층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