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가난한 왕의 성탄
입력 2013-12-21 01:30
1992년에 출간된 ‘타임’지 특별판은 새천년을 앞두고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중요한 10대 인물들을 선정했다. 음악가 모차르트, 발명가 구텐베르크, 탐험가 콜럼버스, 미술가 미켈란젤로, 작가 셰익스피어, 과학자 갈릴레이와 아인슈타인, 정치가 제퍼슨, 종교인 마르틴 루터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뽑혔다.
1223년 첫 번째 크리스마스
각각의 이름들이 들어간 이유는 평범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프란체스코는 왜 들어갔을까. 그의 학식과 사상은 깊지 않았고 루터처럼 종교적으로 큰 위업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가 여기에 포함된 단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삶의 모델을 그리스도로 보았고, 복음서의 문자 그대로 그분을 본받아 살았다는 데 있다. 그의 유일한 갈망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산다는 것을 매우 즐거운 일로 여겼다.
프란체스코는 자신을 따르는 형제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우리 주님의 가장 거룩한 말씀과 행적 이외에 어떠한 즐거움이나 기쁨도 취하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신실한 이들은 복이 있다.”
그리스도 생애의 많은 사건과 말씀들 가운데 프란체스코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구유에 누우신 아기가 되셨던 성탄 사건이었다. 프란체스코는 크리스마스를 특히 좋아했기에 다른 어떤 절기보다 말할 수 없는 열정으로 이날을 맞았다. 그에 따르면 성탄일은 하나님께서 작은 아기가 되어 인간의 가슴에 안긴 날로 축일 중의 축일이라고 말했다. 성육신의 겸손에 너무도 감동을 받고서 성탄을 가능한 가장 엄숙하게 기념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1223년 그레치오 마을에 베들레헴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재현했는데 마구간, 구유와 짚, 살아있는 소 한 마리와 나귀 한 마리를 준비하고 수도사들과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다. 무수히 빛나는 별들 아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하늘로 퍼져 올라갔다. 프란체스코는 베들레헴의 아기라고 자신이 부른 가난한 왕의 성탄에 대해 설교했다. 그는 이날 가난한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이 부자들을 통해 배를 채우고, 황소와 당나귀들이 여분의 건초를 얻기를 바랐다. 여력 있는 사람들이 길에다가 밀과 곡식을 뿌려 이렇게 장엄한 날에 종달새들조차 풍부함을 누리기를 원했다.
프란체스코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에게서 본 것은 신의 무력함이다.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 특권을 버리시고, 인간과 하나 되신 하나님 아들의 비하와 비움을 보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요 1:14)는 짧은 구절에 담긴 깊은 의미에 대해 프란체스코는 찬탄해 마지않았다. 그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선택한 생활양식인 가난은 바로 여기에 근본을 두고 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 갈릴리에서의 방랑생활, 외롭고 쓸쓸한 십자가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철저한 자기 비움, 즉 그의 가난을 따라 자신도 가난하게 살기를 열망했다. 가난은 그의 삶 모든 영역에서 중심점이 되었다. 가난했기에 즐거웠고 가난이 그를 힘 있게 만들었다. 마음마저도 가난하기를 원했다. 누가 부당하게 취급을 하더라도 아무 변명이나 대꾸함 없이 참고 인내하는 것이 마음이 가난한 자이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말 한마디를 들으면 흥분하고 발끈하는 것은 아직 마음이 가난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가난을 부인으로 삼고 살았던 프란체스코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가난하기를 원했다. 자신을 어떻게 다루시든지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눈, 위장, 비장, 간이 나빠 엄청난 병고를 치렀다. 40대 초반에 몸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한 번은 여느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하자 한 수사가 “형제여, 하나님께 간구하여 좀 더 편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분은 형제를 너무 심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체스코는 “내가 만약 형제가 순진한 사람인지 몰랐다면 다시는 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오. 왜냐하면 형제는 감히 하나님께서 나를 대하시는 방법에 대해 잘못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하고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주님, 이 모든 고통에 대해 감사드리나이다. 그리고 주께서 원하신다면 저의 고통을 백배나 더 아프게 하시기를 간구하나이다. 주께서 나를 아끼시지 않고 고통으로 괴롭게 하시는 것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없나이다.”
17세기 마구간 아기 예수 재현
프란체스코가 마구간의 광경을 재현함으로써 백성들은 마음 깊이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께 대한 새로운 사랑을 그들 안에 일깨웠다. 17세기부터는 유럽의 집집마다 크리스마스를 경축하기 위해 구유 속에 아기 예수상을 설치하는 관습이 시작됐다. 성당들과 교회에서도 비치했다.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마구간의 아기 예수를 본다. 그 다음에 봐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가난한 왕을 따라 사는 가난에의 열망이 있는가를 봐야 한다.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