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극동방송의 ‘그 시절’
입력 2013-12-21 02:28
편지→팩스→호출기→이메일→휴대전화 문자→모바일 웹 메신저. 청취자들이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거나 의견을 내는 주요 방식이 5단계를 거쳐 바뀌었다. 불과 20여년 만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인 1990년대 기독교 방송국에는 어떤 사연이 접수됐을까. 50년대 개국한 서울 목동 CBS와 상수동 극동방송을 최근 방문해 ‘그 시절’ 얘기를 들었다.
94년 겨울 김경화 극동방송 아나운서가 ‘사랑의 뜰안’을 진행할 때 소개된 편지다. ‘저희 교회 전도사님이 평소에 너무 피곤해하셨어요. 재미 삼아 친구들과 전도사님 뒤를 밟았는데 막노동을 하셨어요. 전도사님은 저희에게 자장면을 사주고 학용품도 사주셨어요. 우리 모두 엉엉 울었어요.’
가수 김창완은 89∼91년 CBS ‘꿈과 음악 사이에’를 진행했다. 당시 골수암을 앓던 민초희양이 투병기를 보냈다. ‘아버지시여 내 삶을 당신께 바치나니 남은 내 생이 있다면 천진한 어린 양들에게 골고루 뿌려주소서’라는 시였다. 진행자도, 청취자도 많이 울었다. 민양은 결국 스무 살을 넘기지 못했다. 민양의 이야기는 영화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1992)로 만들어졌다.
그 시절엔 청취자들이 다른 사람과 더 잘 교감했다. 간증을 듣고 자수한 강도가 대표적 사례다. 80년 처음 편성된 CBS 간증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 덕분이다. 강도는 금품을 훔치려고 가정집에 침입했다. 마침 라디오에서 전과 8범이라는 과거를 딛고 전도사가 된 이의 간증이 흘러나왔다. 강도는 흉기를 내려놓고 경찰서로 갔다고 한다.
제작과정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에 가까웠다. 목소리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 편집하려면 해당 부분을 가위로 잘라 스카치테이프로 이었다.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은 “87년 야권 단일화와 관련한 출연자의 민감한 얘기를 자를지 말지 가위를 손에 끼고 늦은 밤까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며 웃었다. 음악 방송에서는 신청곡이 접수되면 자료실에서 직접 LP나 CD를 찾았다. 간혹 신청곡이 없으면 해당 디제이는 CD가 대여 중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방송 준비 시간은 과거에 비해 훨씬 단축됐다. 한 PD는 “과거 1시간짜리 방송을 준비하려면 2시간이 걸렸는데 요즘은 컴퓨터 화면에 부르기만 하면 돼서 30분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90년대 초반 극동방송에서 최다 방송된 CCM은 송정미의 ‘축복송’이었다. 다윗과 요나단은 인기 듀오였다. 75년 입사한 공부영 극동방송 이사는 “70∼80년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같이 하늘에 소망을 둔 노래가 인기였다면 90년대는 ‘내 주의 보혈은’ 등과 같이 열정적 보혈 찬송이 인기였다”고 기억했다. 또 그 시절엔 기독교 방송사들의 행사가 활기를 띠었다. CBS는 90년 창작복음성가제를 시작하고 95년 음악 FM을 개국했다. 제1회 성가제에서 소리엘이 수상했다. 극동방송 김 아나운서는 “사연에 담긴 정성은 같겠지만 가끔 손으로 쓴 편지가 그리울 때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강주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