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사랑·희생 가르쳐 준 고귀한 삶 조명… 성탄절, 크리스천 가치관 음미해 볼 특집방송
입력 2013-12-20 18:59 수정 2013-12-21 10:18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를 닮은 선인(先人)의 삶을 회상해 본다. 주요 방송사는 성탄절을 맞아 원수를 양자 삼은 손양원 목사, 영락교회를 창립하고 템플턴상을 수상한 한경직 목사, 노동자 인권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믿음의 모자(母子)’ 전태일과 이소선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재조명했다. 사랑 용서 희생이라는 크리스천의 가치관을 음미해 볼 기회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손양원, 사랑의 빛이 된 한경직=KBS 1TV는 25일 오후 10시 ‘죽음보다 강한 사랑-손양원’을 방송한다. 한국 교회사에서 ‘사랑의 성자’로 불리는 손 목사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구성했다. 손 목사는 경남 함안 손종일 장로와 김은주 집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6년 경남 성경학교에 입학한 그는 부산 감만동 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당시 교회 교인 600여명은 대부분 한센병 환자였다. 그는 기도했다. ‘사람들이 병으로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무섭지 않게 하옵소서. 살이 썩어 갑니다.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하옵소서. 나병환자를 위해 목회를 시작했으나 나병환자를 위한 목회로 끝내게 하옵소서.’ 그는 이 기도대로 목회를 마쳤다. 옥에 갇혔던 기간을 제외하고 전남 여수 애양원에서 사역한 것이다. 애양원은 부모 형제로부터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곳이었다.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손 목사는 1948년 발생한 여수·순천 사건에서 두 아들을 잃었다. 좌우 이념 대립 속에 2600명이 목숨을 잃은 민족적 비극이었다. 그는 아들을 총으로 쏜 좌익 계열 청년을 위해 구명운동을 벌인다. 그 청년의 목숨을 구한 뒤 양자로 삼는다. 세상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50년 한국 전쟁 발발. 그는 한센병 환자들을 두고 피난할 수 없다며 애양원에 남았다. 결군 인민군에게 목숨을 잃고 만다. 순교자의 길을 간 것이다. 권혁만 PD는 “우리는 수없이 상처를 주고받는데 치유하고 화해할 힘을 갈수록 잃어가는 것 같다”며 “손 목사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한국 개신교계의 대표적 인물인 한경직 목사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사랑의 빛이 된 한경직’이 25일 낮 12시10분 KBS 1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된다. 한 목사는 평생 겸손과 청빈의 자세로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사의 삶을 산 성직자로 우리나라 기독교 부흥을 이끈 인물이다. 지난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받기도 했다.
◇전태일의 ‘크리스마스 선물’=CBS TV는 21일 오전과 오후 10시 ‘크리스천 NOW’에서 전태일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방영한다. 노동열사 전태일과 그 어머니 이소선의 신앙을 최초로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전태일은 1970년 11월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소리치며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서서히 죽어가던 노동자들을 위한 절규였다.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자신이 분신할 곳을 알렸다.
동생 전태삼씨는 “다른 사람들은 형의 분신으로 어머니가 변화해 투쟁의 삶을 뒤 따른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어머니의 기도로 형이 변화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다. 어머니는 형을 평화시장 앞에서 한 번 더 낳으신 것”이라고 한다. 전태일 모자는 당시 천막 교회를 짓고 종지기를 맡았다. 지역교회 공동체를 이끌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도록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했다. 평화시장 재단사 아들은 하루 아낀 버스비로 하루 15시간씩 일하는 어린 여공을 위해 풀빵을 사 줬다. 여공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아무리 호소해도 세상이 귀 기울여 주지 않자 분신을 결심한 것이었다. 김동민 PD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인 전태일과 이소선의 모습을 담았다”고 전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