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 ‘후끈’] 응찰자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경매 마술사’
입력 2013-12-21 01:41
경매사는 ‘경매 마술사’로 불린다. 특정 작품의 가격을 조정하고 응찰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계속 따라오게 유도하기 때문이다. 서울옥션, K옥션, 마이아트옥션, 아이옥션, 단옥션, A옥션 등 국내 10여개 경매회사에서 활동하는 경매사는 20여명이다. 경매사 자격증 제도나 공인된 교육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경매회사 직원 가운데 자질이 있는 사람을 2∼3명 활용한다. 경매사가 갖춰야 할 요건은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십, 정확한 발음, 순간적인 판단력 등이다.
지난 11일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 경매’를 담당한 K옥션의 손이천(37) 경매사는 김순응 전 대표의 바통을 이어받아 2010년부터 30여 차례 경매를 진행했다.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한 그는 큰 키의 미모에 분명한 발음으로 응찰자들을 사로잡는다. 또 고객들의 심리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리드하는 솜씨가 강점이다.
“경매를 앞두고 한 달 정도는 아무 약속도 잡지 않았어요. 마인드컨트롤을 하면서 경매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서였죠. 작가와 작품 이름, 추정가와 시작가를 완벽하게 외워야 하기 때문에 연습 또 연습을 반복했어요. 이번 경매에서 특별히 떨리거나 긴장되지는 않았지만 워낙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더욱 정확하게 호가(呼價)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경매사에게는 권한과 함께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출품작이나 패들(번호표)을 든 사람을 놓치지 않아야 하며 경매 금액이 오를 때마다 표시되는 스크린과 박자를 맞춰야 한다. 경매 현장뿐 아니라 전화와 서면 응찰자들도 있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팔 동작과 표정이 손님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손 경매사는 “경매 책자를 집에 들고 가서 숫자를 일일이 손으로 써가며 읽기도 했다”며 “언제 어떤 상황이 연출되고 가격이 어떻게 형성될지 모르기 때문에 운전 중에도 숫자를 중얼거리며 다니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표정이 굳어지거나 찡그리면 안 되기 때문에 매일 집에서 거울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손 경매사는 이번 경매에서 경합이 가장 치열했던 작품으로 김환기의 1970년 작품 ‘무제’를 꼽았다. “4200만원에서 시작해 200만원씩 호가하다가 서면 응찰자가 갑자기 1억을 불렀을 땐 경매장이 순식간에 탄성으로 가득 차는 거예요. 결국 1억1500만원에 낙찰됐지만 그렇게까지 가격이 확 올라가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요.”
그는 “자주 보던 사람도 있고 낯선 사람들도 있었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 쪽 사람들인지는 분간하긴 어려웠으나 덕분에 경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K옥션의 홍보팀장도 맡고 있는 손 경매사는 “국고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경매에서 완판을 기록해 기쁘고 영광”이라며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오랫동안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는 경매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18일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특별경매’를 진행한 서울옥션의 김현희(33) 경매사는 2005년부터 경매를 맡았다. 한국 경매사 1호로 잘 알려진 박혜경 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와 함께 진행하다 박 대표가 서울옥션에서 독립한 뒤 정기 경매와 특별 경매, 홍콩지사 경매를 도맡고 있다. 2011년 홍콩 경매에서는 영어로 진행해 실력을 뽐냈다.
경희대 역사학과를 나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김 경매사는 8년간 40여 차례의 경매 경험과 전문가적인 노하우를 살려 노련하고 편안하게 진행하는 것이 강점이다. 1998년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로는 처음 설립된 서울옥션은 2명의 경매사가 활동하고 있다. 경매사 양성기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입사 후 동료들의 추천과 경합을 거친다.
김 경매사는 경매에 앞서 특정 소장자로부터 좋은 작품을 이끌어내고 도록을 만드는 일까지 맡는 등 1인3역을 한다. 온화한 이미지에 안정적인 목소리로 고객들을 편안하게 이끄는 게 그의 장점이다. 그는 “경매가 큰 액수로 신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호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신뢰를 바탕으로 편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경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최고가(6억6000만원)를 기록한 이대원 화백의 ‘농원’ 낙찰 순간을 꼽았다. “5억9000만원까지는 잘 갔는데 6억원에서 다소 주춤하는 거예요. 여기까지 계속 따라온 현장 응찰자와 눈을 맞추면서 유도했지요. 하지만 전화 응찰자가 6억6000만원에 응찰한 뒤 현장 응찰자가 결국 포기하는 바람에 안타까웠어요.”
그는 “국가적인 경매여서 부담도 크고 책임감도 들었다”며 “낙찰률 100%를 내심 기대는 했지만 막상 완판(완전판매)되고 나니 너무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고 밝혔다. 김 경매사는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의 인터넷 실시간 중계를 보면서 따라 해보는 식으로 연습한다. 낙찰가와 순간순간의 상황을 미리 예상해보고 “잘할 수 있다”며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그는 “미술시장이 호황이었던 2007년에 그림을 많이 팔았던 일과 홍콩경매에서 영어로 진행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며 “특히 이번 경매는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매사가 단지 경매를 진행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며 “작품을 잘 이해하고 연구해 그 가치를 고객들에게 전하는 경매사가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경매 참여하려면…
서울옥션과 K옥션은 유료회원에게만 응찰을 허락한다. 두 회사 모두 연회비는 10만원. 온라인 경매는 웹사이트 회원이면 응찰이 가능하다. 작품을 낙찰 받으면 낙찰 금액 외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 서울옥션은 5000만원까지는 낙찰가의 16.5%, 1억원까지는 13.2%, 그 이상은 11%를 수수료로 받는다. K옥션은 낙찰가의 13.2%(부가세 포함)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
작품을 내놓는 사람도 위탁 수수료를 내야 한다. 서울옥션은 부가세 포함 300만원까지는 16.5%, 그 이상은 11%이고 K옥션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이번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미술품 위탁 수수료는 2%로 알려졌다. 현장에 가지 않고도 전화 또는 서면으로 응찰할 수 있다. 한 작품에 여러 명이 같은 가격으로 응찰했을 경우 우선권은 서면 응찰자에게 주어진다.
이광형 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