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회복 나선 ‘부산신발’] 신발하면!… 부산 아입니꺼∼

입력 2013-12-21 01:42


왕자표’ ‘말표’ ‘범표’ ‘기차표’….

대한민국의 50대 이상 국민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용한 우리나라 대표신발인 ‘검정고무신’의 상표라는 것을.

검정고무신으로 출발해 신발 산업의 부흥을 주도했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던 ‘부산신발’이 30여년 만에 명예회복에 나섰다.

일제시대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검정고무신은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콘이 됐다. 당시 열풍은 요즘 유행하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이상이었다.

검정고무신 브랜드는 대부분 부산에서 생산됐다. 국제화학(왕자표), 태화고무(말표), 삼화고무(범표), 동양고무(기차표) 등은 한국 신발 산업의 중심이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의 신발 업계가 저임금과 풍부한 노동력 활용이 가능한 부산을 생산기지로 삼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들 업체는 80년대 중반까지 흰색 고무신, 운동화, 구두 등 다양한 종류의 신발을 개발·생산하면서 한국 신발 산업의 중흥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임금 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 상실과 독자 상품 및 브랜드 개발에 실패하면서 대부분 기업들이 중국 등 동남아 지역으로 떠났다.

이를 지켜 본 시민들은 “부산신발은 이제 끝났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부산에 남은 신발 소재 및 부품업체들은 생산공장들이 동남아 지역으로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언젠가 다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우수한 소재와 부품개발을 이어갔다. 2000년 정부와 부산시가 신발 산업 육성에 나선 것이 명예회복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시설 현대화와 공동인프라 구축, 기술개발, 해외마케팅, 인력양성, 창업지원 등이 ‘신발산업육성사업’의 핵심이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부산의 신발 산업은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현지법인에 고급 소재와 부품을 수출한 결과 2000년 43%이던 수출 비중이 2010년 72%로 급증했다.

최근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세계적 브랜드들은 한국의 품질과 관리능력을 인정해 OEM(주문자상표부착) 제품 생산은 동남아 지역에서 하더라도 품질 관리는 한국 기업들에 맡겼다. 신발산업육성사업이 서서히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 진출했던 국내 제조업체들도 관세와 인건비 등이 상승하면서 제품 생산지를 다시 부산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산시의 신발 산업 집적화단지가 신발 업체들의 ‘유턴’을 유혹하고 있다.

시는 이달 말까지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도시 내 신발 산업 집적화단지에 입주할 업체 8곳과 입주·용지매매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집적화단지는 8만1860㎡ 부지에 유턴 기업 3개사 등 8개사가 입주한다. 이 단지는 내년 10월 착공해 2015년 6월 완공된다.

중국에서 유턴하는 기업은 학산과 보스홀딩스 등 완제품 업체와 신발 부품업체인 한영산업 등 3곳이다. 이들 기업은 중국 생산공장을 폐쇄하고 집적화단지에 입주한다. 칭다오 공장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학산 관계자는 “중국도 인건비가 대폭 상승해 고부가가치 신발을 국내에서 만드는 게 실익”이라고 말했다.

전상훈 시 신발전문관은 “집적화단지는 3000여명의 신규 인력 창출은 물론 시설 선진화와 함께 부품 및 완성업체가 한곳에 입주함으로써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산신발의 명예회복에는 시의 ‘우리 브랜드 신발 명품화 사업’도 한몫했다.

시가 2006년부터 지역 신발 업체에 개발사업비를 지원, 첨단소재·인체공학적 설계·디자인 등 개발 지원을 통해 부산 브랜드 신발을 세계적 고부가가치 명품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트렉스타의 ‘코브라’, 삼덕통상의 ‘스타필드’, 화승의 ‘르까프’, 나노텍세라믹스의 ‘스티코’, 광성아이엔디의 ‘에스알디’, 에이로의 ‘에이로’ 등 명품 신발이 탄생했다.

이밖에 바이오 메카닉스의 ‘시소 슈즈’, GTS글로벌의 ‘스킨 슈즈’ 등 자세와 몸매 교정은 물론 과학적 설계와 인체공학적 시스템을 적용한 제품들이 개발돼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중국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부산으로 유턴하게 되면 부산은 제2의 신발 부흥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자체 브랜드를 가진 상품이 늘고 있고 수출시장도 확대되고 있어 부산 신발 산업의 명예회복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부산= 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