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인간을 사랑하는 동물
입력 2013-12-21 01:52
인공관절 치환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이것’과 함께 생활하게 했더니 다른 환자에 비해 진통제 사용량이 50% 이상 줄었다. 고령자들이 ‘이것’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경우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심장박동수가 낮아지며 몸의 긴장상태가 풀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과 함께 있으면 혈압도 낮아진다. 1차적인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는 50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자동혈압 측정장치를 부착시킨 후 3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이것’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 수축기 혈압 및 이완기 혈압이 의미 있는 수준에서 낮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것’의 주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 퇴원 1년 후의 생존율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병통치약 광고 문구에나 나올 것 같은 이것의 정체는 바로 ‘애완견’이다.
“그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지구상에서 개뿐이다.” 미국의 작가 조시 빌링스가 남긴 이 말에 애완견이 사람들의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의 비밀이 숨어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자상으로 가장 동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른 개체의 정신적 상태를 추론하는 능력을 비교해보면 침팬지보다 애완견이 훨씬 뛰어나다. 애완견은 심지어 주인이 하품을 하면 따라서 하품을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주인의 감정에 맞춰주기 위해서다. 게다가 개는 주인이 진짜로 하품을 하는지 아니면 가짜로 하는 시늉만 내는지를 구별할 만큼 주인의 표정 변화를 세심하게 읽을 수 있다. 개가 주인을 보면 눈썹이 약 0.5초의 짧은 시간 동안 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주인을 더욱 집중해서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람을 이해하는 개의 이 같은 능력은 훈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발표됐다. 즉,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개나 주인 없이 떠도는 유기견이나 모두 사람의 행동을 인식하고 예측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우리나라에서 애완견을 키우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20%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만큼 버려지는 개들도 많아서 지난해 5만9000여 마리의 유기견이 발생했다. 개는 사람에게 많은 정신적 위안을 주지만, 동시에 그만큼 사람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