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미디어비평] JTBC의 썰전…심야토크쇼? 대중비평? 아니면 멀티예능?
입력 2013-12-20 07:31 수정 2013-12-20 14:05
[친절한 쿡기자] jTBC의 심야프로그램 ‘썰전’이 새로운 공론장을 제공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밤 무려 1시간 20분간 방송되는 썰전은 기존의 토크프로의 고식적 장르를 과감히 깨뜨리며 10개월 넘게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시청률도 지난 9월 처음으로 평균 3%(닐슨기준)대에 안정적으로 진입했다. 지루한 토크프로와 케이블의 한계를 감안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썰전은 그야말로 설전(舌戰)이다. 제작진 말한 이름 그대로 ‘독한 혀’들의 전쟁이다. 독설은 방송에서 극히 예외를 치고는 보통 금기영역이다. 독설들이 서로 팽팽히 맞붙는가 하면 뉴스이면에 갖춰진 뒷담을 공론장에 계속 끄집어내고 있다. 정형화된 언어 내지 고정된 토론프로를 벗어나서 심층적인 시사뉴스와 뉴스의 맥락까지 풀어 설명하며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썰전은 2013년 2월 21일 첫회 ‘독한 혀들의 전쟁’에서 독설을 예고했다. 이어 ‘리얼버라이어티’(2회)‘대한민국 예능계의 TOP3’(3회)에서 잇따라 직설법으로 연예계뉴스를 잇따라 3회 방영했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시청자들은 연예계를 타켓으로 일종의 ‘연예가중계’ 포맷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4회 ‘공직자 재산공개’ 이후 썰전은 총 43회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을 다루는 버라이어티토크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19일 방송된 43회 ‘안녕들 하십니까-어느 고대생의 대자보 외침’은 최근 사회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한 테마였다. 최근 쓰나미 밀려오듯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든 ‘안녕들~’ 신드롬의 정치사회학적 의미를 저인망식으로 드러냈다고 볼수 있다.
썰전은 이같이 인화성이 강한 주제를 설정하고 있다. 사전녹화지만 적절히게 시의성을 살려낸 것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관련 이슈를 보자.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38회) ‘재보선 서청원의 귀환’(37회) ‘국정원 댓글사건 윤석열 팀장 전격배제’(35회) ‘돌아온 손학규’(34회) ‘NLL대화록 실종사건“(33회)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파문‘(30회 ,31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28회) ’박원순과 새누리당 무상교육 으르렁‘(27회) ’증세없는 복지‘(26회)를 들 수 있다. 특히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이 확산되자 2주 연속 편성해 신문과 방송에서 접하지 못한 뉴스뒤의 뉴스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심층성도 돋보였다. 정치적 이슈를 시의적절하게 파고들며 뒷이야기를 심층분석한 것이 고정 시청자 확보에 주효했다.
두 번째로는 김구라 강용석 이철희 등 출연자 3인이 캐릭터 차별화에서 성공했다. 우선 독설의 대가로 통하는 ‘김구라 강용석의 재발견’이다. 막말의 상징이었던 김구라가 재기 무대가 된 것도 이 썰전이다. 거리낌없는 독설을 내뱉는 김구라이지만 썰전에서는 과거의 독설과는 다르다. 밉거나 싫지 않은 부드러운 독설인가 싶다. 전혀 다른 차원의 ‘독설아닌 독설’과 재치있는 말받기가 딱딱하기 쉬운 토크쇼를 편한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역시 독설로 이미지가 추락했던 강용석. 남다른 오지랖으로 새로운 그의 일면을 드러냈다. 서울법대와 하버드대 출신에다 전직 국회의원, 변호사, 심지어 무직의 독특한 개인적 경험들이 썰전의 토대를 다져놓고 있다. 더구나 강용석이 성실하고 치밀한 취재와 사전준비는 매우 인상적이다. 단순한 소개를 넘어 새로운 정보를 계속 제공하는 것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토크쇼에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강용석의 맞수 이철희 소장의 차분하면서도 설득력있는 해설, 그리고 때로는 강력한 치받음도 ‘재미있는 긴장감’을 조성한다.
세 번째, 융합형 장르가 신선하다. 토크쇼에 버라이어티, 정보,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를 융합했다. 굳이 개념화한다면 ‘뉴스인포테인먼트’라고 할수 있다. 뉴스정보를 예능포맷으로 전달하는 장르인 셈이다. MBC의 ‘100분 토론’이나 KBS ‘생방송 심야토론’ 등 지상파 토론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자칫 의무감을 갖고 시청하게 만든다. 토론 형식이나 주제가 뉴스에 이미 나온 익숙한 재료들이 많다. 딱딱한 분위기에 2시간에 가까운 방송시간은 피로도를 증가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썰전은 지루하지 않은 예능의 포맷을 추가해 시청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크게 줄여놓았다.
네 번째는 두개의 프로그램을 한개의 포맷으로 결합한 중층적 프로그램이다. 두개의 프로그램 중간에 스테이션브레이크가 없다. MBC가 이전에 무릎팍도사에 라디오스타를 결합시켜놓은 포맷을 그대로 끌어왔다. 썰전에서 예능토크 미디어비평으로 화면이 넘어가는 장르전환이 시청자의 집중도를 크게 높여놓았다.
지금까지 43회가 방송된 썰전은 jTBC의 간판 프로로 자리를 잡았다. 10개월 가까이 같은 포맷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임에도 그다지 식상함을 주지 않는다. 시사성 높은 주제와 새로운 뉴스정보, 보는 재미, 출연진의 예능적 끼가 조화를 이루는 이른바 ‘케미’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썰전에 매회 새로움을 더해주는 동력이다.
단 한가지가 아쉽다. 썰전의 마무리가 매회 시청자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출연진 3인중 퀴즈를 못맞힌 상대의 머리를 박으로 내려치는 장면은 가학적 폭력이지 않은가 싶다. 얼마든지 다른 벌칙으로도 부담없이 웃음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썰전이 보다 변화된 포맷으로 진화하길 기대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경호 논설위원 겸 방송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