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감청 문제 따끔하게 풍자… 반기문 연출 ‘깜짝 동영상’

입력 2013-12-20 01:39


반기문(사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행사에서 올해 전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킨 미국의 도·감청 문제를 풍자하는 코믹 동영상을 공개해 화제다. 반 총장이 직접 연출·제작·출연했다.

반 총장은 행사가 시작되자 특별손님으로 참석한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러스, 유명 가수 스티비 원더를 향해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올해 유엔과 유엔 사무총장은 도·감청을 당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곧바로 동영상을 틀었다.

동영상에서 반 총장은 세계 각국의 정보요원들이 여러 개 도·감청 장치를 사무실에 몰래 설치한 것도 모른 채 일을 하고 있다. 일하던 도중 반 총장은 가수 스티비 원더와의 약속 장소로 가기 전 흥에 겨워 가볍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이 장면을 도·감청 장비를 통해 각국 정보원들이 훔쳐본다. 또 춤을 추던 반 총장이 “나는 역사상 ‘가장 열심히 일하는(hardest working·하디스트 워킹)’ 사무총장이 될 거야”라고 혼잣말로 다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엿듣던 정보요원이 이를 올해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트워킹(twerking·엉덩이춤)’으로 잘못 알아듣고, 반 총장의 목표가 ‘섹시한 엉덩이춤을 추는 것’이라고 잘못된 보고를 올린다. 이 보고가 외부로 공개돼 각종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한다.

동영상이 끝나자 행사장은 폭소로 떠나갈 듯했다.

평소 대립각을 세우거나 논쟁하길 꺼리는 반 총장이 ‘깜짝’ 동영상을 통해 미국의 불법 도·감청 문제에 대해 에둘러 반감을 표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 ‘시리아 사태’ 해결 과정에서 평화적 해결을 제안한 자신을 향해 군사공격을 주장해 온 미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반 총장은 동영상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기자단의 노고를 치하한 뒤 연단을 내려왔다. 또 이 동영상은 기자단의 방침에 따라 외부 공개 없이 만찬 행사장에서만 선보였다. 반 총장의 동영상 덕분에 화기애애해진 행사는 3시간 넘게 진행됐다.

백민정 기자, 연합뉴스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