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司 수사결과… 남는 의혹] 3급 군무원이 총책?… 軍 조직상 독자적 판단 어려워

입력 2013-12-20 03:28


국방부가 19일 두 달 만에 내놓은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글’ 사건 중간 수사 결과에는 ‘몸통’은 없고 ‘깃털’만 있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여러 차례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셀프 수사’의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연제욱 청와대 국방비서관의 역할과 국가정보원과의 연계 등 핵심 의혹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릐과장급 군무원이 ‘정치 글’ 총책?=가장 큰 의혹은 3급 군무원에 불과한 사이버심리전단 이모 단장이 1만5000여건에 달하는 정치 글 작성과 게시를 모두 지휘했느냐이다. 상명하복과 일일보고가 생명인 군 조직에서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한 행위를 과장급 군무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지시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단장은 사이버사령관에게 사이버 공간에서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응한 작전 결과를 보고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보고서에는 정치 관련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었지만 전·현직 사령관들이 이를 간과했다고 조사본부는 설명했다. 조사본부는 사령관들의 감독 소홀 책임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형사처벌하지 않고 징계만 검토하고 있다. 사실상 봐주기 수사를 한 셈이다.

릐연제욱 비서관과 국정원 연계 의혹=대선 직전까지 사이버사령관을 지낸 연 비서관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 참고인 조사만 했을 뿐 사무실이나 자택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증거인멸을 방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방부의 청와대 눈치보기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국방부 조사본부가 옥도경 사이버사령관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이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청와대와의 연계 의혹을 재차 제기했다.

연 비서관이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 국정원과의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내부 증언도 있었지만 조사본부는 국정원과의 연계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연 비서관과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합동참모본부에서 함께 민군심리전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군과 국정원의 연계 의혹이 제기됐었다. 사이버심리전단 요원들이 국정원 요원들의 글을 일부 리트윗했다는 증거를 확보했지만 조사본부는 두 기관의 연계 증거로 보지 않고 통상적인 네티즌의 활동으로 치부했다.

릐‘정치 글’은 있고 대선개입은 없다?=대선개입 여부에 대한 판단도 논란이 되고 있다. 조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기간을 포함해 심리전단 요원들이 정치 관련 글 1만5000여건을 인터넷에 게시했고, 이 가운데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을 언급해 여당 후보를 옹호하고 야당 후보를 비판한 글도 2100여건에 달했다.

조사본부는 이들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대응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정치인과 정당을 언급한 것이며 정치적으로 개입할 의도나 목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대선 개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같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글이 대선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면 대선 개입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릐‘셀프 수사’의 한계=조사본부가 국방부 직할부대로 장관의 지휘를 받고 있어 애초부터 독립적인 수사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장관의 결재 없이는 군 지휘부의 지시 여부와 청와대 및 국정원 등 타 국가기관과의 연계성 수사는 불가능하다는 게 군 안팎의 판단이다.

옥 사령관과 사이버심리전단 요원들에 대한 압수수색도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 커뮤니티 등 인터넷에서 작성한 글은 수시로 삭제할 수 있는데도 조사본부는 수사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서야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 결과 이 단장이 서버에 저장된 관련자료 등을 삭제하도록 지시해 초동 수사에 차질을 빚었다. 국방부가 사이버심리전단 단장을 불구속 기소한 것도 의문이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가 증거인멸교사죄인데도 구속 수사할 경우 크게 반발할 것을 우려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완화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