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꼼수’… 소치올림픽 앞두고 평화 제스처
입력 2013-12-20 03:28
러시아가 대대적인 사면을 하기로 했다. 사면 대상자 중에는 국제적인 관심을 받던 환경단체 그린피스 회원 30명과 여성 록 그룹 ‘푸시 라이엇(Pussy Riot)’ 멤버 2명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2월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인권탄압국이란 비판을 피해보자는 목적이다. 묘수라고 생각하겠지만 꼼수에 그칠 공산이 크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18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헌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신청한 대규모 사면 조치를 승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사면령에 따라 소요와 폭력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죄인이나 기소된 피고인들도 사면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수감 인원 67만명 중 최대 2%인 2만5000명가량이 사면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은 소치올림픽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집권 2기였던 2007년 과테말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러시아어 대신 영어와 불어를 사용한 연설을 선보이며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7년 동안 500억 달러를 들여 준비한 끝에 열리는 개막식은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위상을 뽐낼 수 있는 최상의 무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기대를 무산시킬 수 있는 좋지 않은 조짐들이 보였다. 미국, 독일, 프랑스, 조지아(옛 그루지야) 등은 줄줄이 정상급 인사들이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사면 소식을 알린 18일에도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가 ‘소치 불참 레이스’에 합류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대신 개·폐막식에 참석하는 대표단에 동성애자인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을 포함시켰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참석했던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러시아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소치올림픽 불참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최근 러시아의 인권 상황에 대해 “옛 소련 시절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외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비정부기구(NGO)를 ‘외국 기관’으로 규정하는 새 NGO법을 발효시켰다. 올 상반기에는 사정기관을 동원해 대대적인 조사까지 벌였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6월 밀어붙인 ‘동성애 금지법’은 성난 국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9월 북극해 인근에서 해저 유전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그린피스 회원 30명을 구속시키면서 비난 여론은 극에 달했다.
푸틴의 사면 조치는 어느 정도 비난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2003년부터 복역 중인 반(反)푸틴 석유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보석으로 풀려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그린피스 회원들은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각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교회 사원에서 반푸틴 공연을 벌인 죄목으로 2년째 복역 중인 푸시 라이엇의 멤버 2명도 형기가 얼마 남지 않아 사면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대대적인 반푸틴 시위를 벌이다 13년형을 선고받은 유력 인사들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푸틴에 대한 저항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