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로 돌아 본 2013 문화예술계… ‘문화융성’ 기치… 숭례문 졸속 복원 등으로 ‘흔들’
입력 2013-12-20 01:33
2013년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문화융성’을 국정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문화 재정 2%를 목표로 내세웠다. 지난 7월엔 ‘문화융성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정책자문위원회로 출범시켰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문화 정부’에 의욕을 내비쳤다.
그러나 올 한해 문화예술계의 현실은 ‘문화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제 위기로 시민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공연·전시·출판 등 문화현장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쏠림현상은 심해졌다. 이런 가운데 활력 있는 정책 행보로 현장의 기를 살려줘야 할 문화 관련 부처의 리더십마저 크게 흔들려 아쉬움을 더했다. 변영섭 문화재청장은 숭례문 부실 복원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경질됐고, 국가대표 출신의 박종길 문화체육관광부 2장관은 공문서 변조 의혹으로 불명예 낙마했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업소 향응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다.
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잡음 아쉬워
미술계의 오랜 염원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11월 13일 문을 열었다. 서울관은 서울 소격동 옛 국군기무사령부 부지(2만7264㎡)에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다. 조선시대 국왕들의 친인척 관련 업무를 담당한 전통 한옥인 종친부 건물과 1913년 일본군 수도육군병원으로 건립된 붉은 벽돌 건물, 그리고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로 이뤄졌다.
‘도심 속 열린 미술관’을 표방하는 서울관은 침체된 미술계에 새 바람을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개관전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져 아쉬움을 남겼다.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에 참여한 작가 38명 가운데 27명이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불만이 극에 달한 미술인들이 정 관장 퇴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 스타만 찾는 공연 시장… 쏠림 현상 심해져
공연계의 고질적인 ‘쏠림 현상’은 여전했다. 1년 내내 샤를 뒤투아와 로열 필하모닉,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급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앞 다퉈 내한했다. 국내 연주자들과 중소형 무대는 이들의 대형 기획 무대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다.
주목 받는 무대도 있었다. 오페라에선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은 완성도 있는 연출로 찬사를 받았다.
무용계에선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을 비롯해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협업한 ‘단’, ‘묵향’ 등이 전통과 현대의 융합으로 눈길을 끌었다. 12월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의 차기 국립발레단장 낙점 소식에 무용계가 들썩였다.
3 숭례문 복원공사 “빨리빨리”가 부실 불러
국보 1호 숭례문이 5년간의 복원공사 끝에 마무리돼 5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완공식을 열었다. 그러나 준공 5개월 만에 20여 곳의 단청이 떨어져 나가는 등 부실 복원의 실태가 드러났다. 단청뿐만 아니라 목재, 기와, 성벽에서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철저한 고증과 전통기법에 따른 복구를 표방한 문화재청에는 일대 타격이었다.
단청의 경우 전통기법의 명맥이 끊어진 지 50년이 넘었고, 안료도 일본산을 사용해 부실시공으로 이어졌다는 논란이 계속됐다. 당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완공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졸속복원을 부채질했다. 빨리빨리 복원 문화가 발가벗겨진 것이다. 숭례문 부실복원은 급기야 변영섭 문화재청장의 경질로 이어졌다.
4 반구대암각화 보존 10년 갈등 정치적 해결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울산 반구대암각화(국보 285호)의 보존운동가였던 변영섭 고려대 교수가 문화재청장으로 임명됐다. 변 청장은 취임 이후 암각화 문제해결에 ‘올인’했다. 사연댐 수면 아래로 자맥질을 반복하는 암각화 보존을 위해 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울산시는 대체 수원 개발 없이는 물을 뺄 수 없다고 맞섰다. 이는 10년 넘게 지속된 해묵은 문제였다.
대립이 격화되자 정치권에서 개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동식 임시 방수벽 시설인 ‘카이네틱 댐’을 건설하는 방안이 도출됐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을 대여하는 문제를 두고도 변 청장은 ‘불가’를 고집하다 정부가 중재에 나서 결국 반출이 결정됐다. 변 청장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운 해프닝이었다.
5 문단에 분 정치 바람… 시집 ‘사람’ 편파 논란
한국시인협회는 지난 5월, 근대 인물 112명에 대한 시집 ‘사람’을 내면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 역사적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찬양 일색의 시를 실었다가 물의를 빚었다. 이에 협회 내 젊은 시인들은 집행부 사과와 시집 회수를 요구했고 협회는 논란을 빚은 시집을 전량 회수하고 예정된 출판기념회를 취소했다.
문예지 ‘현대문학’은 2013년 9월호에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을 몽테뉴 수준의 작품이라고 찬양한 글을 게재해 문단으로부터 정치적 편파와 객관성 결여라는 질타를 받았다. 이어 지난 10일엔 ‘현대문학’이 원로작가 이제하씨의 소설 연재를 청탁하고도 게재를 거부해 또다시 파문이 일었다. 이에 이미 박 대통령 수필 게재를 계기로 ‘현대문학’의 청탁에 응하지 않았던 젊은 문인들이 성명서를 내는 등 문제가 확산되자 ‘현대문학’ 양숙진 대표가 주간 직에서 사퇴하고 편집자문위원들도 동반 사퇴했다.
6 출판계 사재기 파문… 황석영씨 해명 회견
지난 5월 출판업계의 ‘고질병’인 사재기 의혹이 또다시 불거졌다. 의혹에 휩싸인 책이 유명 소설가인 황석영씨를 비롯해 김연수 등 촉망받는 문인의 작품이라 더욱 논란이 됐다. SBS 시사프로그램 ‘현장 21’은 5월 7일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가 조작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낸 ‘여울물 소리’(황석영)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김연수) 등 3권을 사례로 제시했다.
이에 황석영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자신은 사재기 의혹과 관련이 없다고 즉각 해명하며 해당 작품을 절판시키겠다고 밝혔고, 김연수도 “사재기를 원하지도 않고 원할 이유도 없다”라고 해명했다. 출판계는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을 적발할 경우 출판사 회원 자격 박탈과 해당 도서의 베스트셀러 목록 제외 등 강도 높은 규제안이 담긴 자율협약을 지난 10월에 합의했다.
7 서점가 소설 선전… ‘정글만리’ 100만부 돌파
지난해 서점가를 휩쓸었던 ‘힐링’ 열풍을 대체할 바람은 없었다. 자기계발서는 주춤했고 인문학 분야에서는 강신주, 유홍준 등 일부 작가들의 작품이 선전했다.
몇 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던 소설이 올해 약진했다. 지난 7월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소설 순항의 깃발을 올렸다. 곧이어 등장한 조정래의 ‘정글만리 1·2·3’권이 돌풍을 일으키더니 100만 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돌아온 김영하,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도 주목받았다.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 등 외국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소설도 인기를 끌었다. ‘위대한 개츠비’, ‘레미제라블’ 등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 판매가 급증하거나 TV 드라마에 등장한 책이 깜짝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8 전두환 일가 미술품 압수… 경매 물품 ‘완판’
미술계는 불미스런 대형 사건에 잇따라 연루되면서 바람 잘 날 없는 한 해를 보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탈세·횡령 수사 과정에서 고가의 미술품이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기업 비자금 수사에 수차례 연루됐던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다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미술시장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과정에서 검찰이 압류한 전씨 일가의 재산에 상당한 규모의 미술품 컬렉션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600여점의 압수 미술품은 K옥션과 서울옥션이 절반씩 맡아 지난 11일과 18일 각각 경매에 붙였다. 두 경매에서서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고 특정 주제의 경매로서는 이례적으로 경매 물품이 완전 판매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9 최인호·이두식·박노수·강태기… 별들 지다
올해는 안타까운 별세 소식이 유독 많았다.
1970년대 청춘 아이콘이던 소설가 최인호(68)씨가 지난 9월 우리 곁을 떠났다.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고인은 2008년 발병한 침샘암 투병 도중에도 새 작품을 쓰며 삶에 의욕을 보였지만 끝내 생을 마감했다.
미술계에서는 한국 추상화의 대가 이두식(66) 홍익대 회화과 교수가 지난 2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화려한 오방색을 캔버스에 뿌리는 ‘잔칫날’ 연작으로 주목받았다. 같은 달, 한국화 1세대 작가로 꼽히는 박노수 화백도 노환으로 별세했다.
또 연극 무대와 TV 브라운관을 오가며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강태기(63)씨의 별세 소식에 연극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문화생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