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알코올중독 엄마… 요리 통한 화해

입력 2013-12-20 01:31


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맷 매컬레스터/문학동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열 살 되던 해, 아빠의 외도 사실을 계기로 엄마는 알코올중독에 빠지고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늘 거침없고 당당하며 가족을 사랑했던 엄마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무너져 내렸다. 열여덟 살 무렵,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보며 “차라리 지금 엄마가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로부터 떠나 있고 싶어 코소보, 레바논, 이라크 등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 기자가 됐다. 병원에서 만날 때마다 “난 이제 죽을 준비가 됐다”는 엄마 말에 수긍하며, 그는 언제라도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가 돼 있다고 믿었다.

서른다섯 되던 해, 예순두 살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길을 걷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냅다 내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는 느낌이야. 정말 세게, 아무 이유 없이….”

엄청난 충격과 상실감에 엄마를 찾아 헤맸다. 심리치료사를 만나고, 슬픔에 관한 책을 읽어도 슬픔을 달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유품 정리 중 엄마가 쓰던 요리 도구와 애지중지하던 엘리자베스 데이비드의 요리책, 엄마의 손때 묻은 기록이 담긴 레시피 노트를 발견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던 진한 딸기 맛 아이스크림, 돼지 갈비…. 어린 시절 네 식구가 식탁에서 나눴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엄마의 요리책을 붙들고 요리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과거에 대해 잘 몰랐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엄마의 병원 진료 기록을 찾아 모으며 엄마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새롭게 알아나간다.

엄마가 생전에 “요리하는 동안 요리책을 펴놓고 있다면 요리를 제대로 하는 게 아니다”고 했던 말의 의미도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엄마의 요리책을 덮을 수 있을 때, 엄마를 필요로 하는 내 마음의 책을 덮을 수 있을 때, 그래서 나 스스로 터득한 것에, 내 본능에, 내 창의력에,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내 의지에만 의존하게 될 때, 오로지 그럴 때만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저자는 전쟁터가 아니라 부엌에서 일어난, 자기 내면의 전쟁을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엄마가 죽은 뒤 2년 9개월간 요리를 통해 25년간 자신을 돌봐주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엄마와 화해하는 과정이 결코 통속적이지 않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수정 옮김.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