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 착해지나요?

입력 2013-12-20 01:30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로랑 베그/부키

“인간이 원래 착하다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이 책은 저자의 열세 살짜리 딸이 던진, 이 당돌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저자가 페이스북에 이 글을 올리자 온갖 댓글이 달리며 심오한(?)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프랑스 그느로블 대학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다.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지만 인간이 선하냐 악하냐를 따지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선과 악 그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대신 그의 관심은 “선과 악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떠한 형태를 취하는지, 그러한 관념들이 개인의 삶이나 타인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닿아 있다.

각종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는 먼저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서 도덕관념이 시작됨을 보여준다. 조깅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보다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좀 더 열심히 달린다. 공중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손 씻는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려 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남들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평균의 착각’에 빠져 산다. 많은 이들이 자신은 중간 이상은 된다고, 남보다 더 ‘도덕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일반인 1000명에게 유명인이 천국에 갈 것 같으냐고 질문을 던졌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79%, 미국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65%,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는 60%였다. 하지만 ‘자기가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87%에 달했다.

그렇다면 과연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처벌과 통제의 효과는 있는 것일까. 저자는 “억압의 통제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권위가 바닥 쳤을 때 나오는 것”이라며 오히려 규칙을 존중하는 마음은 감시에 대한 두려움보다 소속감, 자발적 동의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당근과 채찍, 보상이 꼭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7∼11세 아이를 둔 엄마들이 자녀의 이타심 계발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과 만들기를 하면서 함께 노는 활동을 하게 했다. 이 중 일부는 봉사활동의 보상으로 작은 장난감을 받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봉사활동 갈 기회가 됐을 때 어느 쪽의 참여율이 높았을까? 흔히 보상받은 아이들을 예상하지만 놀랍게도 아무것도 받지 않은 아이들의 100%가 또 가겠다고 한 반면, 장난감을 받았던 아이들의 44%만 참여 의지를 보였다.

저자는 이런 각종 조사 결과들을 토대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호모 모랄리스(homo moralis), 즉 도덕적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덕적 성향은 사람들을 서로 가깝게 해주고 사회적 협력을 끌어내는 최고의 도구이자 대립의 요인”이라며 “도덕성이 전혀 상반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 때 우리의 도덕성은 더 완전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벨상을 풍자해 희한하지만 의미 있는 연구 결과자들에게 수여하는 ‘이그 노벨상’ 수상자답게 저자는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면 지난달 번역 출간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의 철학자 뤼방 오지앙의 ‘딜레마-어느 유쾌한 도덕철학 실험 보고서’(다산호당) 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좀 더 진지한, 철학적 탐구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가 펴낸 ‘처음 읽는 윤리학’(동녘)으로 독서 지평을 넓히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세진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