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盧 전 대통령 비하 합성사진’ 방송 물의
입력 2013-12-19 02:48 수정 2013-12-18 09:10
MBC가 극우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합성사진을 방송에 내보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보수·진보 세력의 갈등이 질 낮은 인신공격과 험담, 욕설로 비화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MBC 아침프로그램 ‘기분 좋은 날’은 18일 ‘생활 속 희귀암’이라는 코너에서 미국인 화가 밥 로스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자료화면으로 일베 회원들이 로스와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사용했다. 로스는 악성림프종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1995년 사망했다.
MBC가 사용한 사진은 지난 3월 일베 회원들이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 ‘밥盧스’라는 제목으로 퍼뜨린 것이다. 구글 등 포털사이트에서 이미지 파일이 검색되지만 ‘밥盧스’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 합성사진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다.
방송이 나간 뒤 시청자 게시판에 비난의 글이 쏟아졌다. 시청자들은 ‘시청 거부합니다’ ‘자존심도 없는 방송’ 등의 댓글로 MBC의 반성을 촉구했다. 결국 ‘기분 좋은 날’ 제작진은 홈페이지에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공지를 통해 “공영방송에서 제작진의 실수로 합성된 사진이 방송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편집과정에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책임을 다하지 못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정 정치세력을 비하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합성사진이 MBC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에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단순한 사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SBS는 지난 8월 ‘8시 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이미지를 사용해 물의를 일으켰다. SBS는 곧바로 시청자들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2개월 뒤 연세대 마크를 일베 약자로 합성한 사진을 스포츠뉴스에 내보냈다.
일베는 2010년 보수성향의 국내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DC인사이드’에 올라온 게시물 중 자극적인 내용만 별도로 저장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극우성향의 네티즌들이 모인 뒤 역사왜곡, 지역감정 표출, 노골적 여성비하 등의 내용을 담은 게시글을 경쟁적으로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을 우스꽝스럽거나 혐오스럽게 만든 합성사진을 배포하며 진보성향 네티즌들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는 “이 같은 방송사고는 공영방송의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종합편성 채널이 방송을 시작한 뒤 경쟁이 치열해지자 지상파 방송마저 하향평준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