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정치 스승 겅뱌오 덕분에”… 26세 대학졸업 후 첫 관직
입력 2013-12-19 01:34
“시진핑이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앙에서 최고 정책 결정권자들을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겐 큰 자산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1979년 칭화(淸華)대를 졸업한 직후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이던 겅뱌오의 기밀담당 비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겅뱌오의 딸 겅옌은 이를 두고 “아버지의 비서로 일한 3년은 그에게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겅뱌오는 중앙군사위 비서장을 마친 뒤 국방부장(국방부 장관),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으며 지난 2000년 사망했다.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와는 오랜 전우였다. 시 주석이 겅뱌오 밑에서 일을 한 것도 이러한 인연이 바탕이 됐다.
텅쉰(騰訊) 뉴스는 겅옌과 겅뱌오 비서 출신으로 ‘겅뱌오전’을 쓴 쿵샹슈(孔祥琇) 등이 시진핑의 겅뱌오 비서 시절을 잡지 ‘블로거 천하’를 통해 회고한 내용을 18일 보도했다.
시진핑은 26세이던 79년 봄 정치 생애를 군사 분야에서 시작한 것은 그가 오늘날 전임자들보다 훨씬 확실하게 군부를 장악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 당시 중앙군사위 주석은 화궈펑(華國鋒), 부주석은 덩샤오핑(鄧小平)과 예젠잉(葉劍英)이었다. 겅뱌오가 맡은 중앙군사위 비서장은 군사위 관련 일상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였다. 시진핑은 겅뱌오를 도와 중앙군사위에서 다루는 기밀 서류 등을 관리하고 군사위 각종 회의에도 참석해야 했다.
시진핑의 대학 졸업 학력은 부중대장급으로 인정돼 월급은 52위안이었다. 그때는 인민해방군 내에 계급제도가 폐지돼 시진핑과 겅뱌오의 군복에 차이가 없었다. 다만 간부들은 상의에 주머니가 두 개가 더 있었던 게 달랐다. 이 주머니는 회의 때 메모할 수 있는 수첩을 넣는 용도로 쓰였다. 그러나 시진핑에게는 상의 주머니에 수첩을 넣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겅뱌오는 시진핑에게 아예 메모를 하지 못하게 했다. 기밀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어떤 때는 시진핑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사무실로 뛰어가 급히 기억을 더듬어 메모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군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상하게 알게 됐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