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해결사 본능 폭발… 키맨은 영웅이 되다
입력 2013-12-19 01:54
거스 포옛 감독이 기성용(24·선덜랜드)을 전진 배치하자 그의 킬러 본능이 눈을 떴다.
기성용은 18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선덜랜드 홈구장에서 열린 첼시와의 2013∼2014 캐피털원컵 8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려 선덜랜드의 2대 1 역전승을 이끌었다.
지난해 8월 스완지시티 유니폼을 입었다가 지난 9월 선덜랜드로 임대된 기성용의 잉글랜드 무대 첫 골이다. 게다가 리그 꼴찌인 선덜랜드가 3위인 강호 첼시를 침몰시키는 놀라운 한방이었다.
기성용의 해결사 본능을 알아차린 거스 포옛 선덜랜드 감독은 후반 17분 기성용을 교체 투입하며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주문했다. 포옛 감독은 경기 전 “기성용과 면담을 가졌고, 그를 전진배치하겠다. 이는 또 다른 옵션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팀이 0대 1로 뒤진 후반 17분에 크레이그 가드너 대신 투입된 기성용은 포옛 감독의 말대로 적극적으로 공격의 물꼬를 텄다. 위치도 이 전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로 옮겼다.
이어 팀이 1-1로 맞서 있던 연장 후반 13분. 첼시의 페널티지역에서 선덜랜드 공격수 파비오 보리니가 왼쪽에 있던 기성용에게 공을 내줬다. 기성용은 침착하게 오른쪽으로 드리블을 하며 상대 수비수를 제친 뒤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공은 골문 왼쪽 하단을 갈랐다. 포옛 감독이 기성용의 쓰임새를 조금 바꾸자 ‘신의 한 수’가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기성용은 앞으로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조제 무리뉴 감독은 “기성용은 선덜랜드의 공격조립(build-up)에 아주 중요한 선수”라며 “기성용을 압박해서 그의 창의력을 빼앗겠다”고 했다. 그러나 명장 무리뉴도 기성용의 공격 본능을 잠재우지 못했다.
선덜랜드는 기성용의 활약에 힘입어 1999년 이후 15년만에 캐피털원컵 4강에 올라 분위기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
기성용은 경기 후 영국 ‘스카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골을 넣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팀의 4강 진출에 보탬이 되려고 했다”며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어려운 경기를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2골을 넣었다. 오늘 승리한 덕분에 우리 팀은 자신감에 차 있다”며 동료와 기쁨을 함께했다.
선덜랜드 구단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구단 측은 공식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한글로 ‘믿을 수 없는 순간’이라는 글을 남겨 한국 팬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축구 전문 사이트 ‘골닷컴’은 기성용에게 양 팀 선수 통틀어 최고 평점인 4점(5점 만점)을 부여하며 “선덜랜드 중원을 편안하게 조율했다. 홈에서 역전 결승골로 영웅이 됐다”고 평가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