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상임금 판결 임금체계 개편 계기로 삼아야
입력 2013-12-19 01:42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지급주기가 1개월이 넘더라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18일 나왔다. 이번 판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대법원은 지난 수년간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띤 상여금과 수당, 복리후생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판결을 일관되게 내려 왔다.
산업계는 우려하던 ‘체불임금’ 폭탄이 발등에 떨어졌으니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연장·휴일·야간근로가산수당, 휴업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 등의 계산근거가 되는 통상임금이 불어난다. 지난 3년간 각종 수당의 미지급분도 노동자가 요구하면 지급해야 한다. 미지급수당 청구소송 160여건이 이미 법원에 계류 중인데, 앞으로 무더기 소송이 제기될 경우의 사회적 비용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렇지만 통상임금을 둘러싼 갈등과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당위의 절박성을 노동계가 납득하기만 한다면 사회적 대타협의 디딤돌이 마련될 수 있다. 학자들은 노사정 간 사회적 합의를 ‘약자들의 사회협약’이라고 부른다. 뭔가 아쉬운 상대적 약자가 있어야만 그쪽이 먼저 양보안을 내놓고, 그것을 도화선으로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재계가 약자가 된 셈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미지급 수당액의 일괄조정을 포함한 노동정책 현안의 패키지 교섭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 과제는 각종수당 소급지급부담의 완화이고, 경과조치를 담은 입법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타협의 중장기적, 핵심적 목표는 시대정신에 맞게 임금체계를 바꾸고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노동부는 25년 전인 1988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통상임금 산정기준 지침을 내놨다. 기업들은 이 지침에 편승해 임금교섭 때마다 기본급보다는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을 늘림으로써 장시간 노동에 따른 가산수당 부담을 줄이는 편법을 써 왔다. 이런 왜곡된 임금체계가 다시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펼쳐져 온 것이다.
이번 판결은 재계로서도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임금체계를 연봉제, 직무급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개혁하고, 연장·야간근로가산수당 지급률을 낮춰 연장근로의 유인을 줄여야 할 당위성을 판결은 부각시키고 있다. 노동계에게는 반대급부로 고용안정과 정년연장 및 차별시정 강화 등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와 재계는 더 이상 타협을 미루면 공멸밖에 없다는 위기의식과 ‘우리가 약자’라는 인식을 절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