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구본학] 폭정은 영원할 수 없다

입력 2013-12-19 01:43


“김정은을 권좌에 앉혔던 주역들을 퇴진시킴으로써 北의 불안정성은 높아졌다”

15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최근 북한 사태를 둘러싸고 긴급 전화 통화했다. 김정은의 권력승계 2년 이후 북한 내부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김정은은 자신을 권좌에 앉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지난 2년간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인민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을 3번이나 교체했고, 이번에는 당을 장악하기 위해 장성택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잠재적 도전세력을 제거해 유일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집권 초기 선군을 내세운 아버지 김정일과의 차별화를 위해 주민 및 인민군과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대중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했고, 모란봉악단 공연에 미키마우스를 등장시키고 할리우드 영화 ‘록키’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6·28 조치’를 통해 경제개혁 가능성도 보여줬고, 젊은 지도자가 북한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핵개발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김정은 체제는 결국 제 무덤을 파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지난해 장성택이 방중해 경제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중국은 북한에 대해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핵개발을 강성대국 완성의 한 축으로 선전하고 있던 김정은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후 대중(大衆) 친화적 이미지보다는 대외적으로 강경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 12월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와 올해 2월 3차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압박에 대한 돌파구이자 북한 지지에 미온적인 중국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지난 3월에는 키 리졸브 한·미 연합훈련을 빌미로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개성공단을 잠정폐쇄하는 등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벼랑끝 전술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였다.

긴장을 고조시킨 후 협상을 통해 보상을 챙기려던 북한의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 미국, 중국은 양자 간 정상회담을 잇달아 개최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고, 한·미·중 3국 협력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김정은은 남북대화에 응했다. 개성공단이 재가동됐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협상이 진행됐다. 그러나 북한이 돌연 협상을 중단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교착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북한은 야심찬 핵·경제 병진정책을 선언했지만 두 가지 모두 가지겠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할 수 없으며, 한국 및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중국 또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대립을 초래할 수 있는 북한의 도발보다는 한반도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북한의 핵개발을 지지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핵·경제 병진정책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다.

집권 2년이 지난 김정은 정권은 피의 숙청을 수반한 공포정치로 권력 공고화를 기대하고 있으나 김정은을 권좌에 앉혔던 주역들을 퇴진시킴으로써 불안정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핵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중국의 대북지원 감소, 북한 체제의 신뢰 부족으로 인한 대북투자 기피 현상 등으로 북한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의 미라에 참배하고 나오는 김정은의 불편한 듯한 걸음걸이와 피곤한 듯 비스듬히 주석단에 앉아 있는 모습이 북한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얼마 전 평양을 방문한 알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은 김일성대학에서의 강연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은 영원할 수 없다”고 했다. 공포정치로 일시적이며 형식적인 충성을 얻을 수는 있어도 진정한 충성은 얻을 수 없음은 이집트 무바라크와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이 말해준다. 김정은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핵을 포기하고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끌어야 한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