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50)] 생활속 신앙 실천한 ‘교수 어머니’

입력 2013-12-19 01:28 수정 2013-12-19 20:21


YWCA 인물산책 ‘길을 따라서’ 주선애

9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YWCA에서 활동하는 회원층은 두텁다. 그래서 한국Y의 정체성인 ‘청년성’(Young)을 이야기할 때 종종 ‘젊음’을 언급한다. Y 운동과 함께하면 신체의 나이와 상관없이 젊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해준 이가 곧 아흔이라는 황혼을 맞이하는 주선애 한국YWCA연합회 명예연합위원이다. 그는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로서 한국 최초의 여성목회자이자 기독교교육학자다. 그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교수 어머니’로 불린다. 지난 16일 서울 길동 자택에서 주 교수를 만났다.

신앙을 몸으로 전한 노(老) 신학자

1924년 평양에서 출생한 주 교수는 생후 18개월에 아버지를 폐병으로 잃고 신앙심 깊은 할머니와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할머니는 다섯 형제를 폐병으로 앞세우고 항상 새벽이면 주 교수를 데리고 수풀에 앉아 새벽기도를 드리며 내내 우셨다고 한다. 동틀 때 느끼는 맑은 공기를 주 교수는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유언이 “딸 하나지만 딴 생각 하지 말고 잘 키워서 기독교 선생을 만들어 달라”고 하셨단다. 그 기도와 유언 때문인지 주 교수는 평생 외롭지 않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신학자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다. 머리로 알고 있던 신앙, 아직 기독교의 만남을 몰랐고 삶의 방향을 몰라 10대 때 방황의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그때 주 교수의 삶을 완전히 뒤바꾼 한 권의 책이 바로 가가와 도요히코의 ‘사선을 넘어서’다. 빈민선교에 관한 이 책을 계기로 삶의 방향을 잡았다. ‘예수 믿는 것은 봉사하며 사는 것’이라는 실천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유치원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산파 공부를 하여 그것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주 교수에게 영향을 준 두 스승이 있다. 평양서 해방된 후 신학교에서 만난 임종오 선생과 김순효 선교사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실한 어머니의 신앙교육을 받은 임 선생은 주 교수를 사랑으로 키웠다. 김 선교사는 특히 죄와 회개에 대해 강조하면서 뜨겁게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주 교수는 그들을 통해 전도의 열정과 중생의 체험을 했다.

주 교수는 이후 박형룡 박사의 추천으로 신학교 선교부 전액 장학금으로 미국 뉴욕신학대학과 뉴욕대 교육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되는데, 그 기간 중에 유명한 사건이 있다. 유학시절 주 교수에게 절실한 것은 기도생활이었다. 미국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고되다 보니 기도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숙사 옥상에서 새벽기도를 혼자 시작하였는데, 이를 신기하게 여긴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 기도모임이 만들어졌다. 더 놀라운 기도의 역사를 경험하는데, 이때 기도의 동지 중에는 세계적인 영적지도자인 유진 피터슨과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이자 기독교방송을 처음 시작했던 팻 로버슨 등이 있었다.

귀국 후 척박한 한국의 기독교교육 현장에서 주 교수는 우선 기독교교육 교과과정과 교재를 만들고 처음으로 교사 강습회를 열어 목적의식이 없던 교사들을 훈련시켰다. 예장통합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으로 많은 역할을 맡았다. 여장로 문제로 목회자들의 반대에 부닥쳐 두 번째 미국을 갔을 때, 현재 Y 명예연합위원인 김현자 선생으로부터 Y를 소개받고, Y가 지향하는 정의 평화 생명세상의 추구가 주 교수의 마음에 꼭 맞는 것 같아 서울Y에 참여하게 됐다. 교회와 Y를 연계하는 일환으로 당시 지위가 낮았던 여 전도사의 초교파적인 모임을 시작하게 되는데, 현재 이들을 위한 안식관이 건립되기도 했다.

기독여성이여, 검소·봉사·실천하라!

서울 망원동에서 이서양 전도사가 헌신했던 빈민선교, 황장엽 선생과의 만남을 계기로 탈북자 관련 일을 하게 된 것은 주 교수의 신앙관을 엿보게 한다. 그는 늘 신앙교육은 말로만 가르치는 것은 부족하다 하여 항상 생활을 통한 교육을 강조하고 실천해 왔다. “기독교교육은 신앙 인격을 형성시키는 신앙교육으로 가르치는 것만 아니라 신앙 안으로 이끌고 체험하게 하고 동시에 생활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주 교수는 90년에 한국Y에서 함께 전개했던 ‘바른삶 실천운동’을 기억하며 다시금 생활실천운동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요즘 주 교수는 탈북자들을 돕는 일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5년 문을 연 탈북인종합회관을 이끌다 지금은 새롭게 남북이 함께하는 샬롬공동체를 시작했고 최근 탈북자들과 여행도 다녀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집으로 초대해 그들을 먹이며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지원한다. 빈민목회하는 목회자와 꽃제비 아동을 위한 고아원을 만들었다. 2011년 한국여성지도자상으로 받은 상금과 미국의 후원금 등을 합해 사단법인을 만들고 허가를 받은 상태다.

주 교수는 이 시대 기독여성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소비지향, 성공주의, 외모지상주의로 점철된 사회를 비판하고 검소한 삶과 낮은 곳에서 봉사하며 실천하는 신앙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100년을 향하고 있는 한국Y가 국민들의 내적인, 영적인 의식을 깨우고 역사시대에 책임 있는 사람임을 알려주기를 기대한다. 이 모든 게 우리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순종하며 행동하는 신앙의 실천임을 주 교수는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떠 있는 하나의 낙엽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이 시키는 것, 흐르는 대로 나는 떠 있는 것뿐이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인도하는 대로 온 것뿐이고 훌륭한 것은 없어요.”(주 교수의 아흔살 생일 모임의 인사말 중에서)

정유진(한국YWCA연합회 실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