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동아시아는 지금 초초하다

입력 2013-12-18 01:41


“가상의 불안에서 비롯된 초조함 해소하려면 정상들이 자주 만나 논의하는 수밖에”

지난 6∼8일 부산에서 열린 ‘제4회 동아시아 일본연구포럼’에서 뜻밖의 사실을 접했다. 메이지시대 일본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가쓰 가이슈(勝海舟·1823∼1899)가 반전·평화주의자였다는 것. 가미가이토 겐이치(上垣外憲一) 오쓰마대학 교수가 기조강연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가미가이토 교수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이뤄낸 과정에서 과거 조선과 왜의 우호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서 크게 부각됐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州·1668∼1755) 연구자로서 잘 알려진 학자다. 공동선언을 계기로 양국은 옷의 띠만큼 좁은 강을 사이에 뒀을 정도로 가까운, 이른바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라는 말이 나돌았으니 가미가이토 교수도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그런 그가 이번엔 에도막부의 가신으로 메이지정부 초대 해군경(卿)에 오른 가쓰에 대한 연구에 열을 올리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전혀 다른 모습의 가쓰를 조명하고 있었다. 그는 가쓰의 신문기고 등을 모은 담화집(氷川淸話·히카와세이와)을 분석, 가쓰가 청일전쟁 전후 반전론을 폈고 무익한 전쟁이라고 비판했음을 소개한다. “이웃나라 간 전쟁은 어느 쪽에도 이익이 안 되는 ‘형제간 다툼’일 뿐, 특히 이 싸움으로 사이에 낀 한국이 희생된다는 점에서 ‘약자 괴롭히기 전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해군경까지 지낸 이의 반전·평화론이라니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가쓰는 해군력을 강조해 온 이유에 대해 담화집에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해상의 안전을 도모해 무역의 이익을 통한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역설한다.

포럼을 마치고 돌아와 가쓰에 대해 차분히 살펴보니 가미가이토 교수의 주장이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예컨대 후진 아시아에서 벗어나 선진 서구열강을 지향하자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주창자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는 메이지시대의 계몽사상가로 유명하지만 전쟁 찬성파였다. 후쿠자와는 가쓰를 폄하했고(둘은 1860년 미국파견사절단으로 동행), 가쓰도 당대의 대사상가를 탐탁지 않게 봤다.

후쿠자와에 대한 가쓰의 태도는 일본 최초의 기독교계 학교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설립한 니지마 조(新島襄·1843∼1890)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깊이 교류하고 지원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침략주의와 결합한 기독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기독교의 평화정신은 통하는 바가 있었던 것일까.

가미가이토 교수는 최근 동아시아 각국이, 그리고 한·일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듯 보이나 지금도 가쓰와 같은 생각을 지닌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또 아메노모리에 이어 이후 몇몇 사상가를 거쳐 가쓰에게 전해진 반전·평화론은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갖지 않겠다는 전후 일본국헌법 9조로 이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공감 가는 주장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반전·평화사상이 필요하다. 동아시아는 지금 초조함에 떠밀려가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과거보다 힘이 많이 떨어졌다고 자평하는 미국이 초조해하면서 역내에서의 일본 의존성을 강하게 내비친다. 그 결과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기미를 보이자 이번에는 중국이 초조함을 드러낸다. 방공식별구역 등등이 바로 그 예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미국의 대일 의존성에 편승해 미국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만들고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 역시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초조함의 결과다. 그 와중에 한국은 설 자리를 잃고 망연자실이다. 여기에 북한까지 초조함을 부추긴다. 초조함은 초조함을 부른다.

그런데 과연 역내에서 과거와 같은 전쟁이 벌어질 것인가. 누가 그것을 원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초조함의 근거 역시 어디까지나 가상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조함을 극복하려면 지금으로선 역내 정상들이 자주 회동하면서 그 방도를 함께 논의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