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詩와 영화

입력 2013-12-18 01:42

시에 사용되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정신에 충실했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고전주의 시인들이나 초기 일부 낭만주의 시인들의 주장은 영국 시인 워즈워스에 의해 간단히 깨졌다. 워즈워스가 운율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산문 언어가 시어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고 이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시인 발레리가 산문과 시에서의 언어 구사를 각각 ‘행진’과 ‘무용’에 비유하며 사실상 논란을 종결지었다.

시는 언어, 운율, 이미지와 비유, 상징, 패러디 등의 모든 기법이 동원되는 까닭에 산문에 비해 결코 쉽지 않다. 언어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전달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산문보다 더 어렵다고들 한다. 이런 이유로 시를 보거나 읽는다고 하는 대신 감상한다고 하는 편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보거나 감상한다는 점에서 영화도 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특히 ‘본다’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영화는 내용을 이해하면서 보는 경우가 많고, 시는 모르면서 보는 경우가 가끔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해 영사기로 재현한 영화는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한 종합예술이라 시인 혼자만의 영혼의 결집체인 시와 바로 비교할 것은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 영화 관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2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인구 5000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한 사람이 평균 4편을 관람한 셈이다. 극장 나들이가 여가를 즐기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돼가고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장르가 다양해지고 작품 수준이 비약적으로 올라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 가을, 아시아의 수많은 시를 소개하는 ‘아시아의 시 네트워크’를 표방하며 창간한 시 전문지 ‘시평’이 최근 재정난에 막혀 발행을 중단키로 했다. 발간 11년을 맞이한 문학세계사의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도 지난 가을호(45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을 선언했다. 시 전문 계간지 ‘시안’도 올 가을호(통권61권)를 끝으로 폐간했다. 이제 월간 ‘현대시학’과 계간 ‘시인수첩’ 등만 남게 됐다.

시집 한 권과 영화 한 편 값은 비슷하다. 호화장정이 아니면 시집이 훨씬 싸다. 가난을 숙명으로 알고 살면서도 결코 기죽거나 좌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한다. 일찍이 교산(蛟山) 허균도 선비가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 글이 더욱 살아난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번 국산 영화를 볼 때 한 번씩만 시집을 사준다면 가난한 시인들이 좀 더 힘을 내지 않을까.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