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2차례나 실패… 1907년 금융공황이 연준 탄생 계기 마련

입력 2013-12-18 01:37

미국 중앙은행의 탄생은 순탄치 않았다. 1900년 이전에 두 차례의 중앙은행 설립 시도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연방제에 따른 지방분권의 전통이 강한 데다 중앙통제를 의미하는 중앙은행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강력한 금융기관의 존재는 상비군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1860년대에는 1600개의 주 은행들이 7000가지의 화폐를 발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 번째 중앙은행 설립 시도는 1907년 금융공황이 계기가 됐다. 그해 10월 경기침체와 악성 루머 등이 맞물리며 뉴욕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인 ‘니커보커 트러스트 컴퍼니’가 파산하자 공포감이 엄습했다. 투자자들이 대출금을 찾으려고 다른 은행에도 몰려들면서 금융위기가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1907년 공황은 당시 최대 은행가 J P 모건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모건은 자신의 천문학적인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서약하며 다른 은행가들의 협조를 이끌어냈다. 이 사태를 계기로 금융위기 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중앙은행 설립 논의가 불붙었다.

1910년 11월 말 조지아주 지킬 섬에 넬슨 앨드리치 상원의원, 에이브럼 앤드루 미 재무차관보와 미국의 거물 은행·기업가 5명이 모였다. 이들은 10일간의 극비 회동에서 이후 연준법의 기초가 되는 초안을 작성했다.

19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앙은행 설립 문제는 주요한 의제가 됐다. 이듬해 대통령으로 취임한 우드로 윌슨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12개 연방준비은행 설립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연준법 입법을 밀어붙였다.

연준법은 하원에서 찬성 298표 대 반대 60표, 상원에서는 43표 대 25표로 가결됐다. 윌슨 대통령은 12월 23일 법안에 최종 서명했고 이듬해 11월 16일 FRB가 첫 업무를 시작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