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정한 (11) “정한, 네 그림을 찾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입력 2013-12-18 01:39
나는 시튼홀 대학을 졸업하며 두 가지 기록을 세웠다. 그것은 동양인으로 대학 역사상 처음 전체 수석 졸업했다는 것과 시튼홀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졸업생이 아이비리그 대학인 펜실베이니아 미술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과목 A학점(4.0)에 최고 명예 졸업상도 받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에 가면서도 ‘학장 장학금’을 받았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수업 자체가 불가능했던 지각 유학생이 수석 졸업을 하게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었다. 나는 혼자 학교 운동장을 질주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고생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공부에만 집중하느라 한국 학생들을 만나도 아예 말을 걸지 않았다. 한국 학생들은 후일 내가 북한에서 온 유학생으로 오해했다고 했다. 공부가 힘들어 숱한 위기를 만났으나 그때마다 아내의 눈물어린 기도가 떠올라 마음을 돌이키곤 했다.
난 1학년 때부터 아이비리그 대학원을 가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했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초인적인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신다. 이 무렵 아내와 자녀들도 미국으로 모두 건너와 함께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미국에 계시던 어머니 댁에 신세를 지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은 필라델피아에 있어 통학을 하지 못하니 기숙사에 들어갔다. 이 학교를 택한 것은 도서관 시설이 어느 대학보다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에서 강의를 듣는 나머지 시간은 작업실에 박혀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어느 날, 미국 중년 부인 두 사람이 내 작업실을 찾아와 그림 4점을 꽤 비싼 값에 구입해 갔다. 알고 보니 ‘맥도날드’에서 필라델피아 지역 젊은 화가들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여기에 내 작품이 선택된 것이었다. 대학원 작업실에서 그린 내 작품들을 평가하는 교수들의 질책은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한, 자네 것을 찾아! 남의 것을 카피하지 마라.” “이 정도론 넌 화가가 될 수 없어. 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해.”
예술가는 구도자의 심정이 되어야 한다. 나는 ‘웃음과 기쁨’을 내 그림의 주 소재로 잡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그림에 항상 웃음과 재치, 풍자를 담았다. 예술은 만국 언어다, 국경을 초월해 평화를 전달해 주는 중요한 메신저다. 이 그림에 영성과 말씀이 담기면 그것은 작품을 떠나 은혜를 끼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선교의 도구가 된다.
나는 이 무렵 믿음의 아내를 주시고, 연단을 거쳐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유를 깨닫게 됐다. 화가와 교육자로 부르심은 관람객과 제자들에게 주님을 전하는 믿음의 전령사가 되라는 사명임을 말이다.
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해외 선교에도 참여하게 하셨다. 특히 남미 페루 선교에 큰 비전을 주시고 계속 큰 사역을 준비시켜 주심에 지금도 감사를 드린다. 페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9년 내가 출석하던 필라델피아 제일장로교회가 여름 페루 단기선교를 다녀와 시작됐다. 다녀온 멤버 중 나와 매우 친한 동갑내기 집사(피터 한)가 있었다. 그는 주일이면 대학 기숙사에 있던 나를 찾아와 교회까지 친절히 태워다주곤 했다. 그런데 단기선교를 다녀온 그가 갑자기 페루 선교사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난 페루가 좋아요. 아마존 정글 선교사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 같아요. 정글에 들어가니 내 집에 들어온 것처럼 포근했어요.” 그는 이미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집사는 선교를 위해 한방침술 공부를 하더니 결국 목사 안수를 받고 페루 선교사가 되어 현지로 떠났다. 나도 페루에 대해 많은 자료들을 뽑아 그에게 제공했고 도울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침술 공부를 할 때 내가 침을 맞아주는 ‘실습용 몸’이 되어 주었는데 집에 돌아와 내 몸에서 아직 뽑지 않은 침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